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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RPG’를 아십니까?[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입력 | 2023-06-29 11:00:00


‘세계 7대 불가사의’, ‘세계 10대 자연경관’, ‘세계 4대 문명’ 등 우리 주변에는 어떤 분야의 최고를 꼽는 수식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누가 순위를 정했는지도 모를 ‘전국 3대 짬뽕’, ‘전국 3대 빵집’과 같은 분류도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유난히 어떤 분야의 최고를 가리는데 진심을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게임업계에도 ‘세계 3대 RPG’라는 수식어가 존재합니다. 일본 잡지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세계 3대 RPG’는 ‘울티마’, ‘위저드리’, 그리고 ‘마이트앤매직’ 등 3개 게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스마트폰도 SNS도 심지어 인터넷도 없이 게임 정보를 한 달에 한 번 월간지로 확인해야 했던 80~90년대 오랜 게이머들에게 이 ‘세계 3대 RPG’는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리고, 평가는 다를지언정 이 3개 게임은 하나같이 현대 RPG의 기틀을 세운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게임은 어떤 콘텐츠가 들어 있길래 ‘세계 3대 RPG’ 타이틀로 인식된 것일까요?

RPG라는 거대한 집의 주춧돌을 세운 ‘울티마’ / 출처=게임동아

1981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울티마’는 현재 35세 이상의 국내 게이머라면 친숙한 ‘울티마 온라인’의 전신이 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RPG 장르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난데, 독자적인 스토리 라인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게이머의 취향에 따라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가 최초로 적용된 작품이었습니다.

출처=게임동아

더욱이 ‘울티마3‘에서는 캐릭터 하나로만 플레이할 수 있었던 이전 게임과 달리, 여러 캐릭터를 성장시켜 함께 싸울 수 있는 ’파티‘ 시스템이 도입됐고, ’울티마4‘에서는 ’명성 시스템‘도 추가되어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중간 과정이 달라지는 변수를 두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의 파티 시스템과 멀티 엔딩 요소가 이 게임을 통해 대중화된 셈이죠.

워낙 엄청난 인기를 누린 작품인 만큼 ’울티마‘는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온라인 공간의 분신을 뜻하는 단어이자 영화로도 유명한 ’아바타‘의 어원이 바로 이 ’울티마‘ 시리즈의 주인공 ’아바타‘에서 유래됐을 정도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이 ’울티마‘는 MMORPG(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수행게임)의 대중화를 이끈 작품이기도 합니다. 1997년 출시된 ’울티마 온라인‘은 다양한 직업, 스킬, 사냥 등 게이머의 손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멀티플레이 요소를 수준 높게 구현해 후대 게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울티마 온라인‘은 현재도 서비스 중이며, 여전히 업데이트와 패치를 제공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본 JRPG의 조상님과도 같은 미국 게임 ’위저드리‘ / 출처=게임동아

세계 게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식 RPG를 흔히 ‘JRPG’라 부릅니다. 이 JRPG의 조상 격인 게임은 다름 아닌 미국에서 만든 ’위저드리‘로, ’드래곤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등 일본 RPG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일본에 RPG를 보급한 게임으로 평가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981년 처음 출시된 ’위저드리‘는 상대에게 주는 대미지와 방어도를 육각면체 주사위로 정하는 ‘내성 굴림’을 실제 게임에 도입했고, 전사, 도적, 마법사 등의 다양한 직업의 파티가 1인칭 시점으로 전투를 펼치는 등 독창적인 게임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출처=게임동아

치밀하게 구성된 던전에 숨겨진 함정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몬스터, 어떤 캐릭터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난이도와 다양한 보상 등 현재 ’던전 RPG‘의 기초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망 시 특정 장소에서 부활하는 시스템도 여기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위저드리‘의 게임성은 당시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드래곤퀘스트‘, ’파이널판타지 ‘등에 이 시스템이 그대로 접목되었을 만큼, JRPG의 기틀을 세운 게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드래곤퀘스트1은 디자인만 다르지 ’위저드리‘와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출처=게임동아

일본에서 워낙 높은 인기를 누렸던 작품인 만큼 ’위저드리‘ 시리즈는 2001년 출시된 ‘위저드리8’을 끝으로, 일본 게임사에 판권이 넘어가 일본에서만 발매되는 게임이 됐습니다. 현재도 간간이 소식을 전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게임 잡지 번들로 대중화된 명작 ’마이트앤매직‘ / 출처=게임동아

3DO에서 개발한 ’마이트앤매직‘은 위에서 소개한 게임 중 가장 늦은(?) 1986년에 등장한 게임입니다. 초창기에는 위저드리의 던전, 전투 시스템과 울티마 식의 거대한 세계관을 혼합시킨 ’짬뽕 게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명작의 반열에 오른 상당히 희귀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게임 잡지 부록(번들)으로 제공되어 매우 익숙한 ’마이트앤매직‘의 특징은 턴(turn)제와 리얼타임을 오가는 전투 시스템, 그리고 방대한 직업 시스템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이 게임은 직업 등급을 올리려면 해당 등급의 ’선생‘을 만나야 상승하는 독특한 형태의 직업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이 선생들은 방대한 맵 곳곳에 흩어져 있어 게이머들이 일일이 방문해야 했고, ‘대가’ 등급은 상당한 난도의 특별 퀘스트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는 현재 로그라이크 RPG 등 난도가 높은 RPG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시스템으로, ‘선생’들의 위치 정보도 거의 주지 않아 인터넷도 없던 당시 일일이 집을 방문하며 손으로 마을 지도를 그리는 이들도 등장할 정도로 상당한 난도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최근 등장하는 RPG와는 격이 다른 수준의 엄청난 퀘스트와 이동 거리, 그리고 어마 무시한 직업 시스템까지, 제대로 게임을 플레이하여 엔딩을 보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어 RPG 팬들에게 ‘시간여행기’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출처=게임동아

이 ‘마이트앤매직’은 6편부터 공식 한글화가 진행됐는데, 당시 한국 게임시장에 한글화 게임이 거의 없었다 보니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번역 수준이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이를 테면, ‘아크 리치’(Arc Lich)를 ‘힘쎈 이끼’로, ‘오우거’(Ogre)를 ‘오그레’로 번역하는 등, 단어 뜻과 아무 상관 없는 해석을 남발하여 현재까지도 ‘왈도체’라는 개그 요소로 활용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3DO의 도산으로 판권이 유비소프트로 넘어간 마이트앤매직 시리즈는 2014년 ‘마이트앤매직10: 레거시’가 출시되었지만, 그 이후 소식이 끊겨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의 게임으로 남았습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