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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만하면 무선 충전… ‘전기 도로’ 시장 열렸다 [딥다이브]

입력 | 2023-06-29 03:00:00

도로에 패드 매립해 전기차 충전
美-獨-이스라엘 등 도로 시범건설
배터리 시장 바꿔놓을 ‘게임체인저’
1.6km에 176억원 비용은 걸림돌



노르웨이 기업 ENRX가 대형 전기트럭을 이용해 무선충전 시스템을 시험 중이다. 도로 한가운데에 자기 유도 기술을 적용한 무선충전 패드가 매립돼 있다. ENRX 제공


전기차를 몰고 도로 위를 달리기만 하면 배터리가 충전된다. 충전소에 들르거나 케이블을 차에 꽂을 필요가 아예 없다.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이스라엘 스웨덴 독일과 미국 5개 주(미시간·플로리다·인디애나·펜실베이니아·유타)에서 이런 ‘전기 도로’가 건설됐거나 건설에 들어갔다. 이른바 ‘동적 무선충전(Dynamic wireless charging)’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 스마트폰처럼 전기차 무선 충전

동적 무선충전 기술은 휴대전화 무선충전과 원리가 같다. 도로에 매립된 충전패드에 전력을 연결하면 내부의 구리코일에 전류가 흐르면서 자기장을 형성한다. 전기차 아래에 장착된 수신기가 이 자기에너지를 받아 배터리를 충전한다. 운전자는 필요에 따라 충전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충전 효율은 높은 편이다. 미국 플로리다 고속도로용 무선충전 시스템을 지난달 수주한 노르웨이 기업 ENRX에 따르면 200kW 출력의 급속 충전이 가능하다. 리차르 반덴둘 ENRX 부사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동적 무선충전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충전에 드는 시간과 공간을 절약해준다”며 “승용차 버스 트럭 같은 다양한 차량을 모두 충전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전기 도로가 곳곳에 깔리면 운전자가 충전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크기는 크게 줄일 수 있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배터리 기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거론되는 이유다.

● 막대한 인프라 투자비가 걸림돌

아직 각국은 1∼2km의 짧은 구간에 무선충전 패드를 설치해 시험 운영해보는 단계다. 장거리 고속도로 전체가 전기 도로가 되기까진 걸림돌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건 비용이다.

ENRX가 플로리다 4차선 고속도로(올랜도 인근 516번 도로)의 1마일(1.6km) 구간에 무선충전 시스템 설치를 위해 수주한 금액이 1360만 달러(약 176억 원). 충전기 가격도 비싸지만 도로를 파헤치고 전기를 끌어와야 해 공사 비용이 상당하다.

현재 전기차엔 무선충전 수신기가 장착돼 있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 입장에선 이 비용도 추가로 든다. 외신에 따르면 차량당 예상 설치비용은 3000∼4000달러. 스웨덴과 독일, 미 미시간주에서 전기 도로 설치를 맡은 이스라엘 기업 일렉트리온은 이 가격을 1000∼1500달러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안전 문제도 있다. 충전 과정에서 전자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로에 매립된 무선충전 패드가 비나 눈에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을지 실제 사용해 봐야 안다. 반덴둘 부사장이 “잠재적인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규제와 명확한 표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 한국은 전기 도로 기술의 선구자

이제 막 열린 동적 무선충전 시장에선 이스라엘(일렉트리온)과 미국(위트리시티), 노르웨이(ENRX) 기업이 앞서나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기술은 한국이 선구자다. 2009년 세계 최초로 달리며 무선으로 충전하는 ‘온라인 전기자동차(OLEV)’를 만들어 낸 게 KAIST였다. 미 주간지 타임이 ‘2010 세계 최고 발명 50’에 선정할 정도로 주목 받았던 기술이다.

하지만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범사업에 부정적인 여론이 컸다. 무선충전은 물론이고 전기차도 생소했던 시절이다. 서울대공원 ‘코끼리 열차’와 구미시·세종시 전기버스 시범사업이 진행됐지만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2020년 텔아비브에 700m의 전기 도로를 깔고, 전 세계에 기술 효율성을 입증해 보였다. 마침 전기차 시대 도래와 맞물리면서 일렉트리온은 잇달아 해외 사업을 수주하게 됐다.

OLEV 개발을 이끌었던 조동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술력에선 차이가 없지만 우리와 달리 이스라엘은 실제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치고 나가고 있다”며 “신사업일수록 국가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무선전력 분야 전문가인 김남 충북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무선충전은 전기차 전환과 대기질 개선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솔루션”이라며 “한국이 선도적으로 개발한 첨단기술인 만큼 지금이라도 대도시 버스전용차로 같은 곳에 적용하는 걸 논의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