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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론’ 부정하는 習… 아시아경기 통해 국력 과시 노린다[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3-06-28 23:30:00

개막식이 열리는 주 경기장의 모습. 사진 출처 2022 항저우 아시아경기 웹사이트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1년을 기다린 만큼 더 훌륭하고 멋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러내겠다는 항저우 전체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14일 중국 저장성 성도 항저우에서 만난 시민 왕웨이 씨의 말이다. 항저우 대표 관광지 시후(西湖) 근처에서 아시아경기 전용 쇼핑몰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항저우 경제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동안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아시아경기를 통해 더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와서 회복의 계기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했다.》


당초 지난해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던 항저우는 코로나19 여파로 이를 1년 미뤄 올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2022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한다. 개막이 약 석 달 남았음에도 이미 도시 전체가 대회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곳곳에 이를 알리는 깃발, 마스코트, 조형물 등이 가득했다.

항저우 아시아경기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초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고 3연임을 확정한 뒤 처음 치르는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다. 시 주석은 아시아경기에 이어 10, 11월경 각국 지도자 100여 명을 초청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 포럼’도 개최하기로 했다. 두 행사를 통해 일각에서 제기되는 쇄국론 비판을 차단하고, 미국과의 패권 갈등 와중에 중국의 국력을 과시하고 외교적 우군 또한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마스코트
“하늘 위엔 천당, 아래엔 ‘소항’이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남송 시대의 문인 범성대(范成大)가 쓴 ‘오군지(吳郡志)’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 쑤저우와 항저우를 합쳐 ‘소항’이라고 언급하며 두 도시의 경관이 빼어나다고 칭송했다.

항저우에는 시후,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징항(京杭) 대운하, 5000여 년 전 신석기 시대의 량주(良渚) 고성 등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3개 있다. 이에 아시아경기 조직위원회는 이 3개 유적을 형상화해 아시아경기의 마스코트인 3개 로봇 ‘충충(琮琮)’, ‘롄롄(蓮蓮)’, ‘천천(宸宸)’을 만들었다. 충충은 량주 문화유적, 롄롄은 시후의 연꽃잎을 뜻하며 천천은 대운하의 다리 이름이다.

14일 중국 항저우 도심에 ‘2022 항저우 아시아경기’를 홍보하는 조형물이 서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1년 늦게 개최되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항저우 전역은 이미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항저우=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대회 슬로건은 ‘마음이 서로 통하면 미래가 열린다’는 의미를 담은 중국어 ‘심심상융, @미래(心心相融, @未來)’다. 영어로는 ‘Heart to Heart, @Future’다. 인터넷 기호를 사용한 것은 ‘정보기술(IT) 도시’ 항저우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주 경기장은 물론이고 ‘작은 연꽃’으로 불리는 테니스 경기장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꽃잎 모양의 금속 지붕 8개를 회전식으로 여닫을 수 있는 돔 경기장이다. 돔 개폐 때 공중에서 보이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리바바-지리 본사 위치
항저우는 중국 IT 및 자동차 산업의 거점이기도 하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지리(吉利)자동차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지난해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 31개 성(省) 중 저장성의 국내총생산(GDP)은 4위를 기록했다. 300여 개 도시별 순위에서도 인구 1200만 명의 항저우가 9위에 올랐다.

지리자동차는 대회 기간 자율주행차 여러 대를 투입해 약 5km 거리인 주경기장과 선수촌 간 교통을 책임진다. 운전자 없이 선수와 스태프들을 실어 나르는 첨단기술을 선보이는 것이다. 항저우에서 만난 지리자동차 홍보 담당자는 “자율주행차 성능을 높이기 위해 이미 고정밀 정보 위성 9개를 우주에 쏘아 올린 상태”라고 소개했다.

이번 아시아경기를 통해 항저우의 중국 내 위상 또한 대폭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중국이 유치한 대형 스포츠 행사나 국제회의는 수도 베이징, ‘경제 수도’로 불리는 상하이, 경제가 발달한 선전과 광저우 등 4개 대도시에서 주로 열렸다. 즉 1990년 베이징, 2010년 광저우에 이어 중국에서 세 번째 열리는 아시아경기가 항저우에서 열리는 것은 항저우의 위상이 이 4개 도시와 비슷해졌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항저우 외에 원저우, 닝보, 후저우, 사오싱, 진화 등 5개 주변 도시에서도 경기가 치러진다. 이 가운데 수상 종목인 용선(드래건보트)의 전 경기, 축구 예선의 일부 경기가 열리는 원저우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원저우 상인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릴 만큼 장사 수완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원저우 당국은 용선 경기를 위해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용선 전용 경기장을 마련했다. 또 축구 예선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도 정비를 마쳤다. 시 관계자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 경기장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이 경기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원저우는 12∼15일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중국의 이야기를 발굴해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의 ‘중국 이야기 잘 알리기(講好中國古事)’ 대회도 개최했다. 베이징의 중국공산당 및 국무원(행정부) 고위 간부가 대거 출동했다. 상업 중심지로 유명한 원저우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화려함 속에 가려진 그늘
이번 대회를 둘러싼 안팎의 우려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해제에도 올 상반기 중국 경제의 회복이 예상보다 훨씬 더딘 상태다. 5월 청년 실업률 또한 20.8%를 기록했다. 이에 특히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층이 많은 돈을 투입한 화려한 대회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수민족 탄압 등 중국의 고질적인 인권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실제 중국의 언론 통제와 시 주석 우상화, 영어 금지 같은 반(反)세계화 정책, 공동부유(共同富裕·다같이 잘살기) 같은 분배 위주 경제 정책은 일각에서 ‘21세기판 신(新)쇄국정책’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당국은 영어 이름을 쓰는 유명 연예인에게 중국어 이름을 쓰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공공장소의 영문 이름 또한 속속 중국어 표기로 바꾸고 있다. 지난해에는 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3학년의 교과 과정에서 외국산 교재 사용을 금했다.

이에 따른 안팎의 논란이 고조되자 시 주석은 최근 쇄국론을 거듭 부인했다. 28일 런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27일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말하는 자립자강은 ‘폐관쇄국(閉關鎖國)’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7일 네이멍구 시찰 때도 ‘폐관쇄국’을 언급하며 “대문을 활짝 열어 누구라도 협력하겠다며 오면 모두 환영한다”고 했다. 폐관쇄국은 명청 왕조가 권력 유지를 위해 고의적으로 쇄국정책을 시행했으며, 이것이 중국이 서구에 뒤처진 결정적 이유라는 담론이다. 시 주석이 이를 연거푸 언급하고 있는 것 또한 서방과의 일방적인 대결 구도를 자제하고 아시아경기 같은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항저우에서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