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이름이 흐려져요.”
29일 오전 쏟아지는 폭우로 위령탑에 적힌 이름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28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의 슬픔은 그 빛이 바래지 않았다. 흘러간 시간과 빗물로 인해 흐려진 이름 앞에서 아직 그들을 마음속에 묻어둔 유족들의 슬픔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들은 위령탑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아낸 뒤 연신 손과 휴지로 빗물을 닦아냈다. 위령탑에 적힌 502명의 이름 앞에는 ‘보고싶은 딸’, ‘사랑하는 사위’ 등이 적힌 수십개의 꽃다발과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29일 오전 매화시민의숲 남측 삼풍백화점 위령탑에서 유족들이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 뉴스1
우산을 쓰고 10여분간 휴지로 이름을 닦아내며 흐느끼던 한 유족은 “아직도 이렇게 보고 싶은데 위령탑에 적힌 우리 아이 이름이 흐려지는 것 같다”며 “그날 이후 매일같이 꿈에서라도 딸의 얼굴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의 뒤에는 손녀딸이 우산을 든 채 묵묵히 할머니를 기다렸다.
이날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리는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삼풍백화점 참사 28주기 추모식…추모곡 공개·참사 현장 방문
29일 오전 매화시민의숲 남측 삼풍백화점 위령탑에는 수십개의 헌화들 놓여있다. ⓒ 뉴스1
이날 추모식에서는 28년만에 처음으로 희생자 추모곡인 ‘그날처럼 오늘도’가 공개됐다. 추모곡을 작사한 최은영 동화작가는 “2014년 유족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매년 이곳을 방문했다”며 처음 추모곡 작사를 제안받았을때 주저했지만 사람들이 참사 희생자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심을 다해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4.16합창단이 현장에서 헌정 공연을 했다.
유족들은 추모행사를 마치고 현재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 서울 서초구 참사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손영수 삼풍유가족 회장은 ”나도 참사 당시 그곳에서 일하던 딸을 잃은 사람“이라며 ”우리 유가족들은 한순간도 희생된 가족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참사 피해자 단체 8곳이 29일 오전 ‘삼풍백화점 참사 28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뉴스1
이들은 추모식 행사 시작 전인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고 ‘생명안전버스’ 선포식을 개최했다.
4.16재단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생명안전버스는 한국 사회에 있었던 주요 재난참사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피해 가족들의 추모식에 참석해 그들의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 피해자의 일상과 재난참사피해가족들의 연대, 안전한 사회를 위한 발걸음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설명회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문수 삼풍유족회 섭외부장은 ”이런 일을 먼저 겪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미안함을 느낀다“며 ”서로 같은 입장에서의 위로가 가장 큰 위로가 된다. 함께하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또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참사 유족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망“이라며 ”참사 피해는 우리가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