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서울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지 곳곳에서 사업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개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을 어디에 짓는지를 담은 밑그림인 정비계획 등을 확정하고 주민 간 의견 조율에 나선 곳들이 많죠.
다만 아직까지는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단계입니다. 땅을 파서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바닥·벽 등 각종 공사를 거쳐야 해 시간이 좀 걸리겠죠. 그런데 땅을 파다가 옛날 사람들이 살던 ‘집터’나 ‘물길’이 발견되면 어떻게 할까요? 문화재 보존 문제로 단지 밑그림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준공된 건물, 아파트 단지의 과거를 살펴보면 사업 도중 이런 ‘암초’를 만나 준공 시기가 늦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빨간펜 주제는 재건축 소유주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그것, 바로 ‘문화재’입니다.
Q. 재건축 도중 문화재 보존 문제가 불거지면 어떻게 되나요?
“문화재마다 사안이 달라 개별 단지 사례로 설명드리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듯 합니다. 최근 사례를 들어보죠. 바로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래미안 원펜타스) 재건축입니다. 이곳에는 둘레 3.5m, 높이 23m로 올해 수령 368년인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8~9층 건물 수준 높이라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했죠.
당초 조합은 이 보호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이식 작업을 할 업체 선정을 위해 2018년에는 입찰공고까지 냈죠. 하지만 구청에서 이를 반대했고 조합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역사성, 보호수 훼손 위험 등을 들어 느티나무를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2020년 11월 판결했습니다. 다행히 그 동안 공사는 보호수를 제외한 구역에서 계속 진행돼 공사 지연은 없었습니다. 현재 보호수는 그 자리 그대로 잘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현 래미안 원펜타스) 공사현장에 남아있는 보호수. 삼성물산 제공.
매장문화재가 발견돼 분양 지연 위기를 맞았던 잠실 진주 재건축 전경. 송파구 제공.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사 중 문화재 발견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착공 전에 미리 조사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습니다. 3만㎡ 이상, 그러니까 1만평 정도 되는 공사를 진행하려면 땅 위에 노출된 유물·유적 등을 조사해 문화재가 매장·분포되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죠. 조사에 필요한 비용은 건설공사 시행자 쪽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삼국시대 백제시대 성곽인 풍납토성 일대는 현재 문화재청이 보존·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해둔 상태입니다. 올해 2월 고시문에 따르면 풍납토성 보존·관리구역은 146만㎡입니다. 백제문화층이 남아있거나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만 98만㎡에 이릅니다.
1997년 백제 유물이 나온 이후 건축 규제가 적용돼 지하로 2m 이상 땅을 파거나 7층(21m) 이상 건물을 올릴 수도 없죠. 건물 신축이 사실상 불가능해 이 지역의 재개발은 완전히 멈춰 있죠. 송파구와 지역주민은 20년 이상 규제가 지속돼 안전 문제가 우려되고 재산권 침해도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송파구 풍납동 주민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문화재 규제 철폐를 요청하는 시위를 열었다. 송파구청 제공.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1층에 조성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이용객이 증강현실(AR)체험을 하고 있다. 올해 2월 도입된 AR체험 서비스로 조선시대 건물지와 골목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서울시 제공.
2021년 6월 탑골공원 바로 옆인 인사동 ‘공평 15·16지구 재개발’에서도 이 룰이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금속활자 등 매장문화재가 발견됐고, 이를 보존하는 전시관을 조성하는 대신 설계를 변경해 최고층수가 17층에서 25층으로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죠. 이렇게 문화재를 보존하는 개발도 가능합니다. 보존과 개발을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어우러지는 관계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늘어나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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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