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정전 70년, 참전국대사 인터뷰 “죽은 후에도 한국 묻히고 싶어” 사후 안장된 참전용사들 한국전 참전 부대 소속 현역 군인들, 7월에 한국 온다 한국은 ‘힙한’ 나라 반도체, 사이버 안보 등 협력 확장 원해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이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을 어느 나라보다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 참전을 자원했습니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2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요안느 도너바르트 대사는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던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파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당시 병력을 보낸 16개 유엔 참전국 중 8번째로 많은 군인 5322명을 파병해 사상자 768명을 냈다. 대부분 징집이 아니라 자원한 사람들이었다.
국가보훈처가 펴낸 네덜란드군 6·25전쟁 참전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선 특이하게 국민 사이에서 파병 여론이 강하게 형성돼 정부가 파병을 결정했다. 지원병 모집을 시작한 지 10일 만에 1200명 넘게 자원했다.
2019년 부임한 도너바르트 대사는 한국에 오기 전 스리랑카 대사 등을 지냈고 멕시코 폴란드 대사관 등에서도 근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아나 도너바르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2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며 양국 협력의 역사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네덜란드군은 6·25전쟁 당시 주요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다.
“1951년 2월 벌어진 강원도 횡성 전투가 대표적이다. 당시 네덜란드군은 중공군 대공세로 후퇴하는 한국군과 미군 측방을 엄호하는 임무를 맡아 한국군과 미군이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했다. 지휘관 마리누스 덴 오우덴 중령을 포함해 20명 가까이 전사했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현재 횡성에는 네덜란드군 참전기념비가 있어 매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적군 기습공격을 백병전으로 격퇴해 전술적 요충지를 지켜내고 네덜란드군 수십 명이 숨진 인제전투, 중공군 주요 전초진지를 기습해 적군에 손실을 입힌 평강 별고지전투, 중공군 수류탄 공격을 뚫고 325고지를 재탈환해 중공군 진출을 저지한 원주전투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가 참전용사를 어떻게 대우했는지 궁금하다.
“생존 참전용사들은 매년 한국 정부 초대로 한국을 찾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한동안 중단되다 지난해 11월 방한이 재개됐다. 한국은 굉장히 부유한 국가가 되지 않았나. 대부분 90대인 참전 용사들은 전우들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을 정말로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모습에 나 또한 큰 감동을 받았다.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자녀, 손자녀 등과 같이 오신다. 네덜란드에서 이 전쟁이 잘 안 알려져 있지 않아서 가족에게 전쟁 얘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에서 전쟁 관련 문서를 발견한 딸이 직접 사료를 찾고 다른 참전용사들을 찾아 나서 알게된 내용을 책으로 묶어 냈을 정도다. 그래서 아버지가 참전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사실을 듣고 놀라는 자녀들이 많다.
도너바르트 대사가 보여준 한 참전용사 딸이 펴낸 책. 네덜란드 병사들이 본국에 보낸 사진 엽서 등 관련 자료들을 총망라했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용사도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두 분 유해를 모셨다. 내가 부임하기 전에도 몇 분 더 있었다. 한국 정부가 인천공항에서 유족들로부터 유해를 받아 안장하는 전 과정에서 보인 예우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참전용사 마티아스 후버투스 호헌봄 씨와 에두아드 엥버링크 씨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호헌봄 씨는 생전 “전쟁이 사람들에게 준 고통과 한 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았기에 대한민국 재건을 시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왔다”고 밝혔다. 엥버링크 씨는 한국 복무에 큰 자부심을 느껴 전우들과 함께 부산에 안장되기를 희망했다. 2019년에도 윌렘 코넬리스 드 바우즈르 씨가 정전협정 하루 전 철의 삼각지대 전투에서 전사한 전우 5명 곁에 잠들기를 원해 부산에 안장됐다. 그는 이 전투에서 부상으로 두 다리를 잃었다.
지난해 11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 고(故) 에두아드 율리우스 엥버링크와 마티아스 후버투스 호헌봄 씨 안장식에서 유족과 다른 참전용사들이 유해를 묻은 뒤 흙을 뿌리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차원의 참전용사 관련 사업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 달 굉장히 흥미로운 행사가 예정돼 있다. 6·25전쟁애 참전했던 네덜란드 육군 보병 반호이츠(Van Heutsz) 연대 현역 군인 30여 명이 한국을 방문한다. 반호이츠 연대는 네덜란드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VOKS)와 함께 기념행사를 열거나 추모비를 설치하고 네덜란드 최초로 부대 내에 6·25전쟁 박물관을 여는 등 각별히 전쟁을 기억해왔다. 이 전통을 이어받는 부대원들이 한국에 굉장히 와보고 싶어 했다. 자기들끼리 따로 경비까지 모았다고 들었다. 하하.
2010년 네덜란드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스하르스베르헌시 반 호이츠 연대 6·25전쟁박물관 개관에 앞서 박물관에 전시된 중공군 마네킹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마네킹 전투복과 무기는 전쟁 당시 노획한 것이다. 동아일보DB
2020년에는 한국 국방부와 네덜란드가 전쟁에서 수습하지 못한 네덜란드군 유해 신원 확인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 유해를 찾을 수 있도록 전사자 및 유가족 관련 정보를 한국 측에 제공하는 것이다.”
―부임 후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 행사에서 (병력 아닌 물자를 지원한 국가를 포함한) 22개 참전국을 대표해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평화의 패’를 받았다. 당시 참전국 장병들 수통, 참전 배지, 총검집, 놋그릇 등을 녹여 만들었기에 굉장히 의미가 있다. 6·25전쟁 유해 발굴 현장에 갔던 일이나, 참전용사 유해를 한국에 모신 일도 인상 깊었다.
비무장지대(DMZ)는 여러 차례 방문했고 어제도 갔다. 주한유엔군사령부는 매달 정전협정이 규정한 DMZ 내 비행 권한 행사를 위해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비행하고 있다. 비무장임을 보여주기 위해 헬기 문을 열고 그냥 앞뒤로 저공비행하는데 이 달 비행에 참여하게 돼 정말 즐거웠다. 안보 측면에서도 정전협정 내용 확인 활동이어서 굉장히 뜻깊었고 풍경도 아름다웠다.”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 행사에서 참전국 대사 대표로 받은 ‘평화의 패’를 든 도너바르트 대사. 전쟁 당시 사용된 네덜란드 참전 메달, 미군 수통, 그리스 탄피, 프랑스 배지, 비무장지대(DMZ) 철조망 등을 한데 녹여 만들었다. 대통령실 제공
“2019년 부임한 후 3~4년간 한국 입지가 상당히 높아졌다. 드라마나 BTS 등 정말 ‘힙(hip)한’ 나라가 됐다. 지금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어 등 한국 문화가 엄청 인기라서 많은 대학생이 한국을 찾고 있다. 네덜란드 큰 동네에는 한식당이 있을 정도다. 또 휴대전화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에서 한국을 굉장히 혁신적인 나라로 여긴다. 이 분야에서 네덜란드와 많이 협업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한국이 굉장히 질서정연하고 깨끗하며 안전한 나라라고 느꼈다. 학생과 일반인 모두 경쟁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다는 점도 놀랍다. 흥미로운 시기에 한국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후 빈곤 국가에서 경제 10위 국가로 발돋움했다.”
1일 유엔사령부 DMZ 월간 비행을 마친 뒤 헬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도너바르트 대사(왼쪽). 네덜란드 대사관 제공
―지난해 11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한국을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 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향후 어떤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싶은가.
“이미 양국은 몇 년간 서로에게 중요한 무역 상대였다. 지난해 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는 산업 외에도 안보 등으로 협력 분야를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인공지능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국제 고위급회의(REAIM 2023)’를 공동 개최했다.
네덜란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한국 기업과 많이 협력하고 있다. 가령 바다에서 생산한 풍력에너지를 육지로 옮기는 케이블은 한국 기업 것을 쓴다. 풍력발전기 타워와 하부구조물도 포스코가 만들었다. 이처럼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왼쪽)와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네덜란드도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이유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또한 러시아가 주권국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을 굉장히 우려한다. 당연히 계속 지지할 것이다. 현재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에게 국경을 열어줬고 난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마련했다. 전투기 조종 훈련도 제공할 예정이다.
6·25전쟁이 7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양국이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요한 이유는 전쟁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이유 또한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한번 침략하면 그 다음 침략 대상은 어느 나라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러시아가 다른 국가를 침략하고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이 더 이상 세계에서 수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다 함께 압력을 넣어야 한다.”
―여성 외교관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가사와 돌봄에서 동등한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수행할 파트너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어진다. 또 여성은 스스로 업무 능력이 있음을 (주위에) 인식시키지 않으면 남성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기 PR’이 중요하다. 여성 동료끼리 서로 지지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룩한 사회인 만큼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이미 성취한 것을 누리는 여유도 즐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오늘이 ‘세계 자전거의 날’이라 아침에 한국 국회에 초청받아 네덜란드 자전거 정책을 소개하고 왔다. 네덜란드는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나라다. 하하. 통근용, 애들 학교 태워다 주는 용, 장거리용 등 자전거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다.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아 자전거 타기를 적극 추천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자가용을 갖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고 전기차 비율도 높아졌다.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폭스바겐이었는데 최근에는 전기차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아자동차가 폭스바겐을 추월해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저지대라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물에 잠긴다.”
이청아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