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밀을 싣기 위하여 미국 뉴올리언스에 들어갔다. 야경이 휘황찬란한 재즈의 고장이다. 음악이 있고 술이 있었다. 맥주라도 한잔하고 싶은 호기가 일어 일찍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갔다. 여성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앉아 맥주를 시켰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5달러를 내라고 하여 거부를 했더니, 허리춤에 손을 얹고 나를 째려봤다. 상륙하면 술집 종업원을 조심해야 한다던 선배 선원들의 경고가 생각나 두말없이 5달러를 내어놓고 나는 슬그머니 사라져주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커내버럴이라는 작은 항구에 기항했다. 흰색의 요트가 즐비했다. 책방에 들렀는데 ‘해군사관을 위한 해양법’이라는 책이 있었다. 와, 너무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영해, 배타적 경제수역 그리고 공해로 나누어진다. 각각에 따라 우리 선박의 법적 지위가 궁금했다. 해양법 책이 선박에 없어서 안타까웠다. 출항 후 2회독을 했다.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미국의 항구에 도착하면 야경과 무관하게 상륙하여 중고서점에 들러서 유익한 책을 구입할 마음에 들뜨게 되었다. 그 유명한 윈스턴 처칠이 쓴 ‘영어를 말하는 국민을 위한 세계사’라는 책을 미국 찰스턴에서 발견해서 구입했다. 4권이 한 질로 된 책이다. 세 권을 더 구해야 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권을 구하고 마침 시드니에서 나머지를 발견, 한 질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4년이 걸렸다. 횡재를 한 느낌이었다. 이 책들은 나의 서재에 자랑스럽게 보관되어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았던 육지는 기대 이하였던 적도 기대 이상이었던 적도 있었다. 단조로웠던 배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육지는 충분히 고마운 존재였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