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의료기기 개발을 지원하는 ‘범부처 전 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이 5월 성과보고회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국내 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범부처 전 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우리나라는 의료기기 관련 기술 가운데 기존에 없는 신기술로 판단되는 경우, 식약처 허가 외에도 한국보건의료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추가적인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종의 이중 규제다. 연세의료원이 3월 중성자 치료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신의료기술평가를 완료하지 못해 결국 평가가 마무리된 4월부터 중성자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다. 이미 일본에서는 1만5000명 이상이 중성자 치료를 통해 암치료를 했고 한 해 4000명이 치료를 받을 만큼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됐지만 말이다.
우리는 과거와 달리 여러 의료기술 분야에서 독자적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체외진단, 인공지능, 로봇수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해외 각국의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답습하기 바쁘던 시기가 아니란 것이다. 신의료기술평가 문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신기술 평가에 신중할수록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확률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해외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게 벽이 높을 필요가 있을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신의료기술평가의 경우 우리나라만 평가 중인 기술의 시장 진입 기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해외에서는 보통 신기술이 등장하면 일단 시장 진입 후에 평가를 진행한다. 시장 진입 전에 신의료기술평가에 회부할지는 선택 사항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만 신의료기술평가를 꼭 시장 진입 전에 시행하게 한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검토 중인 기술이라도 부분적으로 시장에서 쓰이고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와 건강보험 시스템이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만의 경우도 신의료기술평가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일본은 아예 후평가 시스템이 정착되어 우선 시장에서 쓸 수 있게 하고 수년 후에 신의료기술평가를 실시한다.
하지만 업계는 긍정적 변화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체 신의료기술평가 대상 기술 가운데 위에 언급된 제도의 혜택을 받는 기술은 극히 일부에 머무는 가운데 제도의 개수는 늘어나고 복잡성만 커진다는 데 있다. 현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안에서는 기존에 없는 혁신을 의료기기 분야에서 시도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하면서 규제와 산업 발전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절실해 보인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