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
세계 각국의 정상이 타는 의전차량은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닌다. 그리고 거대한 완성차 기업을 가진 국가라면 이런 자부심을 의전차량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프랑스에서 마세라티의 대형 고급세단 ‘콰트로포르테’를 탄 모습이 그러하다. 공식 의전차량 대신 대사관 차량을 이용했다는 설명인데 마세라티와 페라리 같은 고급 차·슈퍼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존심이 엿보인다. 얼마 전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방문국 정상들은 BMW의 대형 세단을 주로 탔지만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일본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도요타의 고급 세단 ‘센추리’를 탔다.
이번 엑스포 유치전의 최대 적수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공식 의전차량을 마다하고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세단을 탔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르노 차량과 비교하며 의전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어쩌면 빈 살만 왕세자에게는 세계 최고의 자원 부국임에도 이렇다 할 완성차 브랜드 하나 보유하지 못한 현실이 가장 큰 고민거리일 수도 있겠다.
윤 대통령은 르노를 탔지만 이번 유치전 기간 동안 파리에서는 ‘부산은 준비됐다!(BUSAN is READY!)’라고 써 붙인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이 관광 명소를 누비고 의전차량으로도 나서며 유치전을 도왔다.
미국 고급 전기차 기업 루시드 투자에 나선 바 있는 사우디 국부펀드는 2025년 양산을 목표로 전기차 브랜드 ‘씨어(Ceer)’를 만들었다. 이미 생산된 자국의 차가 있다면, 왕세자 역시 그 차를 타고 엘리제궁을 찾았을지 모를 일이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