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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NYT “바그너 반란으로 러군 전투력 크게 약화할 수도”

입력 | 2023-06-30 11:09:00

가볍고 기동성 좋은 유연한 군대 지향하는 10년 개혁 실패
엄격한 상명하복, 사병 안위 경시 등 소련 시대 폐습 여전
러군 현장 지휘관·병사들 프리고진의 러군 고위층 비난 동조





예브게니 프리고진 러시아 바그너 용병그룹 대표가 반란을 일으킨 지 하루 만에 중단하고 망명한 사건의 후유증이 러시아군의 사기를 한층 더 떨어트리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그동안 노출됐던 지휘능력 부족, 과도한 상명하복, 부패, 부족한 보급, 전황 호도 등 여러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러시아의 독립 매체 메두자의 군사 전문가 드미트리 쿠즈네츠는 “프리고진은 떠났지만 (러시아군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프리고진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76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블로거 “Z 전쟁 괴짜”는 “비전을 제시하라고 요구해온 사람들은 장군들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는 다만 군인들 대부분이 조국과 정부를 구분한다며 “조국은 무한하며 절대 배신하거나 잃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군인, 전쟁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전쟁 반대 확산

이 같은 반응들은 전반적으로 군인들, 전쟁 지지자들 사이에 전쟁에 대한 반대가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쿠즈네츠는 “전에는 전쟁이 이처럼 대대적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반란 사건이 지휘관과 병사들 사이의 간격을 드러냈다면서 러시아 군대가 형편없어서 패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프리고진의 반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러시아군 비판에는 동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군의 문제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문화에 내재된 문제다.

러시아군은 10년 전 개혁을 시작하면서 가볍고 기동성이 좋은 유연한 군대를 지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럽군에 승리하기 어렵다며 제시한 방향이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 알렉산드르 골츠는 “러시아군은 단기, 국지전에서는 승리할 수 있지만 그뿐”이라고 말했다.

군 개혁은 유연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의사결정을 야전지휘관들에게 넘기지 못한 것이다. 엄격한 상명하복을 중시하고 병사들의 안전을 경시하는 소련 시대의 유산 때문이다.

러시아 국방부가 최근 바그너 용병 그룹 등 모든 민간 군사단체들에게 오는 1일까지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해 통제권을 넘기라고 통보한 조치가 군사 블로거와 언론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 됐다.

◆러 재벌들 모두가 사병 조직에 관심

러시아의 용병 단체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다. 가장 먼저 용병을 운영한 푸틴 측근 재벌 겐나디 팀첸코의 용병 조직 레도우브트(Redoubt)는 시리아의 에너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 파병 병력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가즈프롬도 3개의 사병 조직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 프리고진은 지난 4월 텔레그램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사병 창설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사병조직은 불법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은 지난해 10억 달러 가까이를 지원받았다.

그러나 사병조직은 바그너그룹 반란에서 보듯 큰 위험요인이다.

골츠는 “무기를 가진 모든 사람이 무기가 국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프리고진이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프리고진 반란 군 지휘, 협조체계 취약성 드러내

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프리고진의 반란이 러시아군의 지휘체계가 취약함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한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군대와 다른 안보 조직 사이에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그너 그룹의 기갑 병력이 모스크바에서 200km 떨어진 곳까지 진격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러시아 지상군의 저항은 전혀 없었으며 공습에 나선 헬기 10여 대를 격추하고 Il-20 공정 사령부를 공격했다.

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공군과 지상군 사이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또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많은 지휘관과 사병들이 반란에 동조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란이 우크라이나 러시아군 전투력 약화할 수도

미 당국자들은 프리고진의 반란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는 징후는 없었지만 러시아의 전투 능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에 맞서 밀리지 않고 있다. 몇 달 동안 지뢰밭, 참호 및 탱크 장애물 등을 대규모로 구축해온 덕분이다.

그러나 지휘체계, 통신, 보급 등 문제가 여전한 러시아군이 방어를 넘어 공격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군 총사령관을 헤르손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질서정연하게 철수하는 공로가 있는 세르게이 수로비킨 대장에서 전쟁 초기 러시아군의 실패에 책임이 있는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으로 교체한 일은 고위 지휘관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 대한 현장 지휘관들의 불신을 촉발해 지휘 명령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 대외정책연구소 롭 리 선임연구원은 “프리고진에 대한 지지는 그의 국방부에 대한 비난이 먹혀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반란사건 뒤 공개석상에 자주 등장해 자신이 건재할 것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러시아군과 군사 블로거들 사이에선 그가 해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군 고위직들 사이의 내분과 이를 처리하는 푸틴의 방식이 러시아군 병사들의 사기를 한층 떨어트릴 것이다. 러시아 군사전문가 파벨 루진은 “안그래도 떨어져 있는 사기를 높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