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귀신하면 떠오르는 건 긴 머리와 소복 차림의 여성 귀신 생존투쟁이 ‘恨 품은 여인’ 만들어 ◇여성, 귀신이 되다/전혜진 지음/344쪽·1만6500원·현암사
정보라 소설가
여름에는 역시 으스스한 귀신 얘기가 제격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귀신’은 신이한 존재와 죽은 사람의 넋을 모두 합쳐 이르는 단어다. 도깨비나 요괴부터 장가 못 가서 원한이 맺힌 몽달귀신, 밥을 굶어 죽은 아귀, 객지에서 비명횡사한 객귀, 정체를 알 수 없는 잡귀 등 종류도 아주 많다. 한국은 풍부한 민속신앙과 구비전승을 갖춘 나라이며 ‘귀신’이라는 단어 속에 무속신앙, 불교, 도교, 유교의 개념이 모두 섞여 있기 때문에 귀신 이야기도 많고 귀신의 개념 자체도 입체적이고 복잡하다.
그러나 평범한 한국 사람에게 귀신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아마도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일 것이다. 처녀귀신은 보통 원한을 품고 죽어서 귀신이 되고, 그래서 용감한 원님이나 지혜로운 선비가 그 원한을 풀어주면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 감사를 표하고 저승으로 떠난다. 끝. 이렇게 기본적인 구조는 거의 비슷한데 처녀귀신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 원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계모의 학대 때문에 죽어 원한을 품기도 하고, 성범죄의 피해자가 돼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어 원한을 품기도 한다. 한국은 어쩌다가 처녀귀신의 나라가 됐을까? 한국의 전설은 어째서 다 원한 가득한 이야기들밖에 없을까?
그냥 귀신 얘기만 골라서 읽어도 된다. 익숙한 처녀귀신부터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사랑 이야기까지 한국 전통의 공포 이야기, 가장 한국적으로 무서운 상상력을 되짚는다는 관점에서 읽어도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정보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