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전영웅 지음/192쪽·1만2000원·흠영
제주도 어느 작은 동네 의원의 진료실을 지키는 의사가 쓴 에세이다. 저자는 절박한 사람들을 만난다. 일하다 밭에서 넘어졌다고 환자의 남편은 말하지만, 턱과 입술 눈두덩에 피멍이 든 여자는 절대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다. 며칠 뒤 여자는 다시 병원을 찾아와 거처를 쉼터로 옮겼다며 가정 폭력을 당한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저자는 맞고 사는 수많은 여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어떤 할머니는 “남편이 제때 밥을 주지 않으면 때려서 빨리 가야 한다”며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다. 가정 폭력은 범죄로 다스려지기보다는 ‘참고 살아야지’라는 말 앞에 사그라든다. ‘페미니즘’이 때로는 현실 속에 방치된 문제의 해결보다는 정치적 슬로건으로만 활용된다는 사실에 저자는 분노한다.
저자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아픔과 불편에 공감하고, 그것을 홀로 깊이 곱씹으며 글을 써내려간다. 의사의 역할은 통증의 의학적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많은 고통이 사회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이 밖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할 때 동네 병원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절망하고, 신속항원검사가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직업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나아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보태는 선의를 가진 존재임을 돌아보게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