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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문 닫는 1호 탄광, 저무는 연탄 시대

입력 | 2023-06-30 23:51:00


소설가 박민규는 새벽마다 곤한 잠을 뿌리치고 연탄불 갈러 나가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서울서 오빠와 자취하던 신경숙은 저녁마다 불붙은 연탄을 사러 긴 줄을 서면 ‘일하랴 학교 다니랴 애쓴다’며 맨 먼저 챙겨주던 구멍가게 아저씨를 떠올렸다. 연탄배달 하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들켜 도망치던 골목길을 회상한 출판인도 있다. 명사 24명이 쓴 에세이집 ‘연탄’은 서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국민 연료’의 추억을 일깨운다. 국내 1호 탄광 화순광업소가 30일 폐광한 데 이어 광주·전남 지역의 마지막 남은 연탄공장인 ‘남선연탄’이 곧 문을 닫는다.

▷연탄 때는 집이 대세가 된 건 1960년대다. 산림녹화 5개년 계획으로 벌목이 금지되고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땅속 무연탄을 캐다 기계에 넣고 찍어 내면 되니 값이 쌌다. 하루 두세 번 갈아주면 방은 하루 종일 따뜻했고 무연탄이라 연기도 나지 않았다. 여성들은 연탄 덕분에 부엌 아궁이에 쪼그리고 앉아 불 때고 요리하는 노동에서 해방됐다. 1960년대 후반엔 연탄공장이 서울에만 150개, 전국엔 400개가 넘었다.

▷그래도 수요를 대기 어려웠다. ‘김장은 못 해도 굶어죽지 않지만 연탄은 없으면 얼어 죽는다’며 집집마다 연탄을 쟁여두던 시절이다. 통행금지 시간에도 연탄 수송은 예외를 인정받았다. 한파가 몰아친 60년대와 석유파동 이후인 70년대 ‘연탄 파동’이 닥치자 대통령은 “장관직 내놓을 각오하라”며 닦달했다. 당시 동아방송 연말 ‘10대 뉴스 맞히기’ 공모전의 1등 상품이 연탄 1000장이었다.

▷‘아궁이 혁명’을 일으킨 연탄 시대는 보건의료 위기의 시대다. 연탄가스 중독 사망률이 제1, 2종 전염병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처음엔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던 정부는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하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연탄가스 마시면 김칫국을 마시던 시절이었는데 서울시가 제독제 발명 공모전에 상금 1000만 원을 내걸었다. 정부는 식당과 여관에 가스 경보기를 설치하고 보건소마다 산소호흡기를 비치했다. 가스에 중독된 남매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치료기는 하나. 자식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놓이는 부모가 적지 않았다.

▷남선연탄의 폐업으로 전국에 남은 연탄공장은 강원도 6곳을 포함해 24곳, 연탄 때는 집도 8만 가구밖에 안 된다. 초속 7m 엘리베이터로 수백 m 땅 밑에 내려가 석탄을 캐고, 연탄을 만들고, ‘소설과 대설과 동지를 가로질러 연탄불 갈았던 어머니’들 덕분에 산림녹화도 산업화도 성공했다. 탄광과 연탄공장의 연이은 폐업 소식에 새삼 ‘연탄으로 길러진 세대’였음을 깨닫는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