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통보제’ 1년뒤 시행 법안 통과 본보 보도 4년만에 제도 마련 일각 “병원밖 출산 등 부작용 우려” 거제-수원서도 미신고 아기 사망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정보를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한 ‘출생통보제’(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아일보가 2019년 1월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숨진 지 7년 뒤에야 존재가 알려진 ‘투명인간 하은이’ 사례를 보도하고 정부가 출생통보제 도입 방침을 밝힌 지 4년여 만이다.
● 의료기관, 출생 14일 이내 지자체에 통보
출생통보제는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7명 중 찬성 266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미등록 아동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아이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출생통보제는 법안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의료기관은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심평원에 출생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심평원은 모친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시·읍·면의 장에게 출생 정보 등 출생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출생통보를 받은 시·읍·면의 장은 신고 기간인 1개월이 지나도록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모친 등 신고 의무자에게 7일 이내에 출생 신고를 하도록 통지해야 한다. 이후에도 신고가 되지 않으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출생통보제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가 유기·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출생통보제는 18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발의됐지만 그동안 의료현장에서 행정 부담 및 책임 소재를 이유로 반대해왔다. 이에 여야는 민간 병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료인이 진료 기록부에 출생 신고에 필요한 출생 정보를 입력해 심평원에 전달하면 심평원이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
출생통보제가 뒤늦게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미등록 아동 사각지대 해소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출생통보제 때문에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가 병원 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병원 밖 출산이나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임신부도 강제로 출생신고를 하게 돼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며 “미등록 아동 보호라는 법 취지와 정반대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 5일 된 영아 시신 야산에 묻은 부부
국회에서 출생통보제가 통과된 이날 경남 거제시 등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야산에 유기된 ‘유령 아기’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9월 생후 5일 된 영아를 비닐봉지에 싸 야산에 묻은 사체은닉 혐의로 사실혼 관계인 20대 A 씨와 30대 부인 B 씨를 긴급체포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남 고성군은 B 씨가 병원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 B 씨 부부는 처음엔 “아이를 입양보냈다”고 진술했지만 계속된 추궁 끝에 “아이가 숨졌다”고 실토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서도 2019년 4월 말경 대전에서 출산한 아동을 방치해 사망하게 한 20대 친모가 긴급체포됐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거제=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