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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끝나고 또 수술, 의사가 부족해요”[생명을 살리는 수술]

입력 | 2023-07-01 03:00:00

〈3〉초응급 심장 수술
동아일보-고려대의료원 공동기획
대동맥 혈관 터지는 대동맥박리… 초기 대응 늦으면 사망 위험 급증
집에서 ‘콜’ 받고 달려나와 수술… 심장이식, 협력 필요한 고난도 수술



심장 수술은 대동맥박리와 같은 초응급 수술에서부터 관상동맥우회수술처럼 생존율이 100%에 가까운 수술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기피 과로 인식되면서 극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신재승 고려대 안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심장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두 달 전, 48세의 남성 A 씨가 한밤에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A 씨는 극심한 흉통을 호소했다. 급성 심장질환이 의심되는 상황. 응급실 의료진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다. 심장과 연결된 동맥이 찢어진 것 같았다. 의료진은 퇴근한 백만종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를 급히 호출했다.

A 씨의 병명은 대동맥박리. 모든 심장질환 중에서 가장 신속한 처치가 필요한 병으로 꼽힌다. 이른바 ‘초응급 질환’이다. 백 교수는 얼른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른 수술을 제쳐 두고 당장 A 씨 수술에 들어갔다.

백 교수는 망가진 대동맥 혈관을 인조혈관으로 대체했다. 수술 시간은 9시간 정도 걸렸다. 좌심실과 붙어 있는 대동맥 뿌리, 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와 뇌로 향하는 혈관 3개를 인조혈관으로 바꿨다. 또 다른 부위에는 혈액이 잘 흐르도록 스텐트를 삽입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A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회복 과정을 거친 뒤 일반 병실로 갔다. A 씨는 현재 건강한 상태다.

● 최고난도의 대동맥박리 수술

백만종 고려대 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대동맥박리 수술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적극적 지원과 관심을 촉구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대동맥박리는 중년 이후에 많이 발생한다. 동맥경화, 협심증, 고혈압이 있을 때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대동맥은 심장에서 혈액을 내보내는 통로다. 내막, 중막, 외막의 3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젊을 때는 혈관 탄성도가 높아 혈압이 일시적으로 높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탄성도가 떨어지면 혈관이 딱딱해진다. 스트레스가 생기거나 혈압이 올라가면 혈관의 맨 안쪽 내막층에 가장 먼저 금이 간다. 얼마 후에는 중막층까지 찢어진다. 이런 식으로 대동맥이 찢어지면서 가짜 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대동맥박리라 한다. 혈관이 찢어질 때 가슴과 어깨 등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박리가 시작되면 혈액이 샌다. 심장을 감싸고 있는 주머니인 심낭에도 혈액이 차게 된다. 그러면 심장 박동이 점차 어려워진다. 이 단계에서 수습하지 못하면 상황은 더 악화한다. 교통사고나 추락사고가 발생하면 처음부터 대동맥이 파열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경우가 초응급 상황이다.

대동맥박리 단계에서 제대로 처치하지 못하면 절반 정도가 이틀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 게다가 대동맥 파열로 이어진다면 생존 자체를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대동맥박리 단계에서 신속한 처치가 필요하다.

대동맥박리 수술은 심장 관련 수술 중에서 최고난도로 꼽힌다. 환자의 혈액을 모두 빼낸 뒤 서서히 공급하면서 체온을 낮춘다. 체온이 28도 정도 됐을 때 비로소 수술에 들어간다. 혈관의 어느 부위가 찢어졌느냐에 따라 수술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인조혈관을 여러 개 삽입할 경우 수술 시간은 9시간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 70대에도 심장이식 수술 가능
10년 전, 당시 74세의 B 씨는 협심증 진단을 받았다. 우선 막힌 혈관을 뚫기 위해 관상동맥우회수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술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심근경색이 발생하며 심장이 멎어버렸다.

신재승 고려대 안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보람으로 버텨낸다며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응급 처치가 필요했다. 신재승 고려대 안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에크모 시술을 했다. 에크모는 중환자들의 호흡과 혈액 순환을 돕는 장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심장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응급 상황이었기에 심장이식 대기 순서가 높아졌다. 얼마 후 심장을 구해 수술할 수 있었다. B 씨는 2주 동안 중환자실에 머물렀고, 이후 재활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70대의 고령인데도 심장이식 수술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 80대가 된 B 씨는 지금도 건강한 상태다.

심장이식 수술은 고령자만 하는 게 아니다. 급성 혹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젊은 환자도 많다. 신 교수는 10대 초반의 C 양 사례를 들려줬다.

C 양은 갑자기 힘이 떨어지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급히 응급실로 왔고, 소아과 병동에 입원했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여러 검사를 한 결과 심장이 크게 늘어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급성 전격성심근증이란 병이었다. 검사 도중에 C 양의 심장이 멎었다. 곧바로 에크모를 달았지만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다행히 3주 만에 뇌사자 심장 기증을 받을 수 있었다.

신 교수는 “심장이식은 큰 혈관을 연결하면 대부분 완료되며 수술 시간은 3∼4시간 정도 걸린다. 다만 장기 이식 동의에서부터 최종 이식까지 여러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난도가 높은 수술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 분초 다투는 심장 수술
심장질환 관련 수술 중에는 관상동맥우회수술과 심장판막증수술이 비교적 흔한 편이다.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수술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협심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혔을 때 발생한다. 이때 다른 혈관을 찾아 막힌 관상동맥을 대신하도록 연결해주는 수술을 시행하는데, 바로 관상동맥 우회 수술이다. 수술 시간은 대체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심장에는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문 역할을 하는 판막이 4곳 있다. 이 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판막을 고쳐서 넣는 인공판막치환술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이런 수술은 대략 3시간 남짓 걸린다.

대부분의 심장 수술은 사전에 복잡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심장부터 정지시켜야 한다. 움직이는 심장을 수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각 장기로 혈액과 산소를 공급할 수 없다. 이 경우 당장 뇌세포부터 손상된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를 활성화시키려면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 밖으로 인공심폐기를 연결한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인공심폐기는 심장 역할을 하는 펌프, 폐 역할을 하는 산화기로 구성됐다. 심장으로부터 온 혈액이 산화기에서 깨끗한 혈액으로 바뀐 뒤 펌프를 통해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심장은 뛰지 않아도 혈액 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장치는 1950년대 개발됐다. 그전에는 심장 수술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중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에크모 시술의 원리가 이와 같다.

● 수술할 의사가 부족하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무엇보다 사람을 살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해 전공의 지원자는 매년 20∼30명에 불과하다. 몇 년째 흉부외과 전공의를 받지 못한 병원이 수두룩하다.

올해 초,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2005년 이후 18년 만에 40명을 넘어섰다. 좋은 소식이지만 그들 모두가 끝까지 버텨낼지는 미지수다. 이미 3명이 중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정 교수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닥쳤을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어 “단순히 의료수가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해외 의료 선진국의 정책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것을 제안했다. 가령 고가의 비급여 진료는 해당 영역 전문의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이런 방식을 포함해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수를 늘리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장혈관흉부외과의 인력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3명의 교수가 돌아가면서 모든 당직을 소화하고 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신 교수도 매월 9회의 당직을 서야 한다. 백 교수도 예정되지 않았던 응급 수술에 갑자기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기자와 인터뷰한 당일에도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응급 수술을 했다.

세 교수 모두 후배 의사가 없어 고난도 수술 기술의 맥이 끊기지 않을까를 가장 걱정했다. 공통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이러다 환자는 밀려오는데 수술하지 못하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그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