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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 노점상 출신 프리고진 반란에 줄행랑친 푸틴, 리더십 치명상 입었다

입력 | 2023-07-02 10:27:00

핫도그 노점상 출신 프리고진 반란에 줄행랑친 푸틴, 리더십 치명상 입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2011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 (가운데)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6월 24일은 지옥과도 같은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자신이 부리던 용병그룹 수장이 반기를 든 데다, 하루 만에 900㎞를 진격한 반란군이 모스크바 턱밑에 육박한 날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러시아의 국가 존립이 흔들린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설립자이자 요식업 재벌 콩코드그룹 소유주로 알려졌다. 그의 인생 역전극을 살펴보면 러시아라는 나라와 이를 이끄는 푸틴의 이너서클 세력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한지 알 수 있다.

6월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그룹 소속 탱크가 진주했다. [뉴시스]





교도소 들락거리던 시정잡배, 푸틴 만나 벼락출세

1961년생인 프리고진은 10대 시절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1988년 출소 후 핫도그 노점상을 시작해 돈을 벌었다. 장사 밑천을 마련한 그는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식당을 차려 요식업계에 자리 잡았다. 그즈음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과 안면을 트면서 정계·군부 인사들과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고진은 ‘콩코드 케이터링’이라는 회사를 차려 정부와 군 관련 급식 사업을 싹쓸이하며 단숨에 거부로 성장했다. 푸틴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의 생일 파티는 물론, 외국 정상들의 크렘린궁 방문 기념 연회도 도맡았다.

한동안 ‘푸틴의 요리사’로 불린 프리고진은 푸틴의 지시로 용병 사업에 뛰어들었다. 푸틴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고자 해외 이권 사업에 손대고 싶었지만, 이를 도맡을 조직이 없었다. 이에 푸틴은 러시아군 총참모부 예하 정찰총국(GRU)의 특수부대에서 잔뼈가 굵은 드미트리 우트킨 중령을 프리고진에게 붙여주며 용병회사를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우트킨이 조직을 만들고 프리고진이 자금을 대는 형태로 만들어진 게 바로 바그너그룹이다. 회사 이름은 독일 음악가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따왔다. 우트킨이 평소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한 나머지, 히틀러가 좋아했던 음악가 바그너 이름을 자신의 콜사인으로 써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현행법상 용병회사 설립 및 운영은 불법이었지만, 푸틴의 개인 사병 집단으로 탄생한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군에 기생하며 급격히 세력을 키웠다. 바그너그룹은 GRU 예하 스페츠나츠 부대 훈련장을 주둔지로 사용했다. GRU 요원들이 바그너그룹 대원 훈련을 맡기도 했다. 러시아군 자산 목록에 있는 전차와 장갑차, 헬기, 심지어 전투기까지 바그너그룹의 손에 넘어갔다. 탄약과 유류 등 각종 보급품이 영수증 없이 바그너그룹에 제공되는 일이 예사였다. 이런 특혜가 가능했던 것은 바그너그룹이 푸틴을 뒷배로 뒀기 때문이다.

푸틴의 비호 속에서 바그너그룹은 시리아, 리비아 같은 분쟁 지역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도 진출했다. 이들은 유전, 금광 등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하고 일부 독재국가에선 권력자 경호 업무도 맡아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바그너그룹이 얼마나 막대한 자금을 보유했는지 정확한 자료가 공개된 적은 없다. 다만 쿠데타 당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프리고진 개인 사무실 한 곳에서만 40억 루블(약 614억8000만 원)어치 현금 뭉치를 찾아낸 것을 보면 바그너그룹의 자금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으로 몸집 불린 바그너그룹


2014년 발발한 돈바스 전쟁은 프리고진을 푸틴의 비공식 사병 집단을 관리하는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낸 사건이다. 당시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군을 대신해 돈바스 지역에 대한 반군 교육과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력과 인력을 강화하며 몸집을 불렸다. 프리고진은 시리아 내전, 리비아 내전에도 개입해 푸틴에게 막대한 검은돈을 안겼다. 당시 그는 ‘러시아 대통령 행정고문’을 자처하고 다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군부와 협력 관계였다. 하지만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엘리트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군의 구원투수였다. 러시아군이 극도의 부패와 관료주의, ‘데도브시나’로 불리는 병영 부조리에 빠져 졸전을 거듭할 때 전선 각지에서 활약한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 정규군 부대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력·전투력을 발휘했고,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에 어김없이 투입돼 능력을 입증했다. 바그너그룹이 승전보를 전해 올 때마다 프리고진의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지난해 가을 동부전선 리만 전투에서 러시아 정규군이 대패한 후 군부에 대한 푸틴의 신뢰가 추락하자 바그너그룹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러시아 군부가 바그너그룹을 견제하고 나선 시점이 이때부터다.

바그너그룹과 러시아 정규군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의 관계와 비슷하다. 바그너그룹이 푸틴의 사병 집단이었던 것처럼, 무장친위대도 히틀러의 사병 조직으로 출발했다. 독일 국방군이 프로이센 귀족 출신 엘리트가 주축이었던 반면, 무장친위대는 그 모체인 돌격대부터가 무뢰배 집단이었다. 오늘날 러시아 군권을 틀어쥔 인사 대부분이 소련 때부터 군과 정보기관에 있던 공산당 엘리트인 데 반해,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간부 상당수는 시정잡배 출신인 점도 비슷하다.

프리고진은 막강한 자금력 덕에 재벌이 됐으나, 출신성분 탓에 실로비키(옛 소련 군·공안기구 출신 인사)의 이너서클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처럼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권력 핵심부 인사들은 바그너그룹을 천한 용병집단 정도로만 여겼다. 프리고진은 군 수뇌부의 천대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런 갈등은 결국 바흐무트 공방전을 계기로 폭발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소도시 바흐무트는 당초 러시아 정규군이 공략하려던 곳이다. 러시아는 교통요충지인 이곳을 통해 슬로뱐스크, 크라마토르스크로 진출하려고 지난해 5월부터 공격을 퍼부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못 냈다. 바흐무트 전투가 격화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러시아는 이때부터 바흐무트에 정규군은 물론, 바그너그룹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정규군과 바그너그룹 사이에 치열한 전공 다툼이 벌어졌다. 올해 1월 들어 바그너그룹이 바흐무트 전선을 통제하며 전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바그너그룹은 사실상 자살공격조인 ‘돌격대’와 죄수부대를 투입했고, 엄청난 사상자를 내며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5월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한 프리고진은 러시아 정규군의 무능함을 성토하며 군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쿠데타 이후 철수하는 바그너그룹 용병들과 러시아 주민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프리고진 “우크라이나 대선 출마” 선언


사실 바그너그룹의 쿠데타 조짐은 올해 초부터 감지됐다. 프리고진은 지난해 가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바그너그룹의 초호화 본사 건물 ‘바그너센터’를 완공한 데 이어, 선전 전문 조직을 창설했다. 연말부터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더니 올해 초 연방 상원의장을 지낸 공정러시아당 당수 세르게이 미노로프 의원과 연대해 정치 기반 구축을 본격화했다. 이윽고 프리고진은 3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군벌이 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이때 마침 바흐무트 전투가 격화됐고,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에 탄약 및 연료 보급을 끊으면서 양측 갈등은 깊어졌다.

러시아 정규군은 바흐무트 전선에서 바그너그룹의 측방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작전 지역을 인계하고 바흐무트에서 철수하는 바그너그룹의 진로에 지뢰를 깔아 다수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이에 격분한 바그너그룹 측이 러시아군 여단장을 구금하고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루한스크 외곽에서는 병원 점유를 놓고 정규군과 바그너그룹 간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그너그룹이 점차 통제 불능에 빠지고 있는 가운데 프리고진은 6월 초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견된 병력 상당수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 일대로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아조프해 연안의 로스토프는 러시아 내륙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향하는 교통요충지다.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전선에서 빼낸 바그너그룹 전투부대를 러시아 본토 군수물자 집적 지역에 집결시키는 것은 위험한 시그널이었다. 이에 쇼이구 국방장관은 6월 10일 “모든 용병은 7월 1일까지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하고 군의 통제 밑에 들어오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튿날 거부 의사를 밝힌 프리고진은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 대한 비난을 맹렬하게 쏟아냈다. 결국 국방장관 행정명령 2주 뒤인 6월 23일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군이 바그너 주둔지를 미사일로 공습했다” “원흉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바그너그룹의 모스크바 진입을 막기 위해 러시아 국가근위대 병력이 배치됐다. [뉴시스]



단 하루뿐이었지만 쿠데타 진행 경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바그너그룹은 로스토프 지역에서 출발해 초고속으로 진군했는데, 그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저항은 없다시피 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가근위대, 연방보안국, 경찰 병력을 총동원하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파견된 공수군 병력까지 급히 불러 바그너그룹 진격로에 차단선을 쳤다. 반란을 진압하고자 배치된 부대 일부가 바그너그룹에 투항하거나 합류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바그너그룹은 하루도 되지 않아 900㎞를 진격해 모스크바 입구까지 접근했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정부 수뇌부는 모스크바를 탈출했다. 크렘린궁은 부인했지만 푸틴 도주설은 정황상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전용기 IL-96과 정부 관료들을 태운 Tu-214 수송기가 모스크바를 탈출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피했다가 바그너그룹의 회군 발표 직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항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개 용병집단의 반란에 러시아 심장부가 뒤집어진 초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일개 용병집단 반란에 러 심장부 뒤집혀

‘바그너의 난’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푸틴 체제에 치명상을 입혔다. 푸틴 대통령은 수족처럼 부리던 용병에 배신당한 무능한 지도자이자,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민을 속인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바그너그룹의 진격은 단 하루였으나, 그들이 지나간 도시와 길목 곳곳에서 “바그너”를 외치며 거병을 반긴 러시아 국민은 수없이 많았다.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이 국민들은 결국 체제 불안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성정도 체제 불안을 더 부추길 것이다. 그는 프리고진은 물론, 바그너그룹 반란에 가담했거나 협력·방조한 군과 정부 인사를 대대적으로 숙청할 테다. 이는 군과 정부 곳곳에 숨어 있던 반(反)푸틴 세력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푸틴은 이런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떻게든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핵무기 사용 등 극단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그너의 난은 끝났지만, 러시아의 대혼란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6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