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축구공을 들고 있다. 재충전 중인 박 전 감독은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나이 예순에 선택한 베트남행은 그에겐 마지막 도전과도 같았다. 베트남 문화에 대한 존중과 아들뻘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는 다시 한번 축구 인생의 꽃을 화려하게 피울 수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파파 리더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상징적인 장면은 그가 트레이너실에서 선수의 발을 직접 마사지해주는 모습이었다. 그가 트레이너실을 자주 찾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몸으로 스킨십을 하면서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했다”며 “선수들의 부상 부위와 치료 정도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생긴 에피소드도 있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 초기 선수단 식사 때 그는 통역에게 “가위를 좀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식당 직원이 들고 온 것은 서슬 퍼런 칼이었다. 박 전 감독은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내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았다. 이후로는 가능한 한 말을 짧고 정확하게 하려고 신경 썼다”며 웃었다.
선수들과 서로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된 후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들과의 대화에는 베트남어와 영어 그리고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했다. 그는 “가끔 전화로 얘기할 때 옆 사람이 ‘대체 그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하는데 축구에 관한 얘기라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박 전 감독이지만 그는 ‘원 팀’의 원칙을 어긴 선수들은 두 번 다시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는 무서운 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베트남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세웠다. 그는 “5년 넘게 베트남 팬들과 협회로부터 큰 사랑과 지원을 받았다. 베트남 축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아카데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또 한 번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2, 3년은 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과 베트남이 아닌 제3국에서 제안이 온다면 대표팀이든 클럽팀이든 가리지 않고 맡을 생각이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