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악화 책임 서로에게 떠미는 미중 한국, 對中 전략 전환에 신중해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한다고 밝히면서 미중 고위급 소통 재개에 속도가 붙는 흐름이다. 미국에선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존 케리 대통령기후특사 등이 줄줄이 방중에 나설 계획이다. 중국에서도 친강(秦剛) 외교부장의 방미를 시작으로 고위급 당국자들의 방미에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모두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만큼 미중 교류가 시간이 갈수록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일각에선 “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신(新)워싱턴컨센서스를 신호탄으로 미중 관계가 바닥을 찍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대신 ‘디리스킹(탈위험)’으로 선회하고 있는 만큼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 이후 전개되는 미중 관계를 보면 미심쩍은 면이 적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후 처음으로 ‘좀비 마약’ 펜타닐 원료를 밀수한 중국인을 체포하고 관련 기업을 제재한 데 이어 반도체 규제 강화와 중국 첨단 분야에 대한 투자 제한 강행을 예고했다. 미중이 기후, 보건 분야 협력을 위해 실무그룹을 재가동한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마무리되자마자 미국이 중국에 다시 채찍을 꺼내든 셈이다.
할 브랜드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블레임 게임(blame game·서로 비난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무부와 국방부 자문위원을 맡았던 브랜드 교수는 미중 대화 재개에 대해 “미국은 미중 소통 재개 노력을 보이는 것이 중국에 대한 기술 규제에 유럽을 참여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중국 역시 미중 관계 악화에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제3국에 대한 보복 위협으로 미국과의 협력 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모처럼의 미중 긴장 완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바이든 대통령의 시 주석을 겨냥한 ‘독재자’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단순한 실언으로 보기 어렵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백악관의 중국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미 대(對)중 강경파가 절대다수인 백악관과 행정부, 의회의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마침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외교협회(CFR) 연설에서 중국과의 ‘평화적 공존’을 목표로 제시하며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및 유럽 국가와의 ‘새로운 블록’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화적 공존과 민주주의와 독재 블록 모두 미소 냉전 시기를 관통하는 표현들이다.
브랜드 교수는 미중 관계 전망에 대해선 “미중 모두 지금은 위기 대응에 최적의 시기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올해는 비교적 평온할 것”이라면서도 “대만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초부터 급격히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국내 일각에선 미중 대화 재개를 두고 한국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봄이 왔다”고 소란 떨기엔 아직 이르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