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이건용 작가의 ‘신체항’(1971년). 나무를 뽑아 흙더미 위에 올려 놓는 실험미술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진섭 미술평론가
미술에서 ‘실험’이란 과연 그런 것인가? 그렇다.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새로움을 찾는 게 바로 미술에서의 ‘실험’인 것이다. 그래서 ‘실험미술’이라고 부른다. 전위미술(avant-garde art)과 동의어로 통하는 실험미술은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에 반(反)하고, 기성의 제도에 도전하며, 사물과 사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꿔 놓는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은 전후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미증유의 격변을 야기한 제3·4공화국 시대의 미술을 다룬다. 이른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으로 통칭되는 격동기를 산 전위 예술가들이 뱉어낸 의식의 분비물이 현재 우리가 보는 작품들인 것이다.
성능경의 ‘신문읽기’(1976년). 신문을 읽다가 면도칼로 오려내는 행위를 반복하며 당시 군부통치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난해한 개념성 때문에 정치적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황사바람처럼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던 숨 막히는 정치적 상황하에 사회의 일각에서 벌어진 이 ‘사건(event)’은 실험미술이 지닌 교묘한 책략의 외피를 보여준다. 언젠가 성능경은 개념미술에 빠져 있던 당시의 심경을 가리켜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의 이러한 심정은 그로부터 한참 뒤 민주사회가 도래하자 자신이야말로 과거 독재 치하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거나, 자신의 작품이 저항의 산물이라고 호도한 일부 실험작가들의 태도와는 상반된 것이다. 여기서 후자는 자신의 예술 언어가 사회적 억압에 대해 무능할 때 느낀 마음의 빚이 ‘선택된 소수(selected minority)’로서 전위주의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다가 터져 나온 심리적 전도(顚倒) 현상처럼 보인다. 즉, 스스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과한 일종의 심리적 보상인 것이다.
정강자 ‘키스미’(1967년 작품, 2001년 재제작). 과장된 신체 부위를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뉴시스
이번 전시는 모두 여섯 개의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①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 ②도심 속, 1/24초의 의미 ③전위의 깃발 아래-AG ④‘거꾸로’ 전통 ⑤‘나’와 논리의 세계: ST ⑥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 등이다. 전시기획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강수정 큐레이터와 구겐하임미술관의 안휘경 큐레이터는 이 여섯 개의 소주제를 렌즈 삼아 1960, 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전개를 관찰했다. 거시적이기보다는 미시적이며, 추상적이기보다 구체적인 접근법이다. 즉, 순서에 따라 ‘무’ ‘신전’ ‘오리진’ 등에 의한 한국청년작가연립전, 김구림, AG, 이승택, 이건용과 ST, 대구현대미술제와 파리비엔날레라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법론을 채택한 것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