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얼마 전 ‘공유 별장’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을 만났다. “그런데 ‘공유’라는 개념과 ‘별장’이라는 개념이 공존할 수 있나요?” 별장이라는 건 모름지기 숙박업소와 달리 내 취향, 내 흔적을 더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냐는 취지였다. 사진을 보자 더 이상의 증명은 불필요했다. 애초부터 취향이 아닐 수 없는, 형편 이상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물론 그 ‘N분의 1’조차 비싸다는 게 함정이지만.
비슷한 취지로 실천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하여 ‘원정 서재’.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 아닌 데스크 서핑(desk surfing)이랄까. 나를 설레게 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대체로 책상이 있다. 언젠가는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책 냄새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멋진 서재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기에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여지없이 책상을 찾아 나선다.
시작은 두 해 전, 첫 출간 원고 작업을 하던 때였다. 한 주 정도 혼자 시간을 갖기로 하고 숙소를 찾았다. 기준은 하나, 바다 뷰 책상과 편안한 의자.
그 첫 ‘원정 서재’는 속초였다. 뭐든 처음이 그렇듯 특히 더 애틋하게 남았는데, 방에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가 한몫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리밍으로 테이프를 고른다. mp3 스피커로 들으면 훨씬 더 깨끗한 음질로 듣고 싶은 노래만 골라 들을 수 있는데 왜인지 그렇게 된다. 러닝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가 맛있는 걸 먹고, 낮잠을 자다가 또 맛있는 걸 먹고, 자기 전엔 영화를 한 편 본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항상 바다가 있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정 서재’라는 이름 아래 바다 뷰 책상을 수집한다. 남몰래 틈틈이 바다 앞 오피스텔들의 시세를 점검하긴 하지만, ‘원정’이라는 매번 낯선 장소성이 주는 특별함도 아직은 좋다. 또 지도 위에 포진한 ‘원정 서재’들을 보면, 문득 떠나고 싶은 어느 날 이 중 하나 정도는 비어 있겠지, 마치 내 것인 양 마음이 든든하다. 내 흔적도, 소유권도 없지만 스스로 부여한 ‘공유 별장’ 멤버십인 셈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갖고 싶다.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책 냄새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멋들어진 서재. 한쪽에는 작은 바를 만들어야지. 영화 볼 큰 스크린도 있으면 좋겠다. 근처에 물회 맛집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뭐가 됐든, 멀리 떨어진 서재가 필요한 누군가들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물론 아직 준비된 건 이름뿐이지만… ‘원정 서재’ Coming Soon!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