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총선 지역구 획정 기한 이번에도 무시해 선거개혁 불확실성 커져 정치신인 등 국민 불편 개혁 일정 공개하고 이행 의지 보여야 한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9년 말 국회는 국민 대다수에게 개탄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면서까지 여야 간 심각한 갈등 속에서 상정했던 선거제도 개혁안을 어처구니없는 수정안으로 대체한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복잡한 수정안을 신속하게 선거에 활용한 정당들의 행태였다. 비례대표 의원 의석 배분에 관한 논리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던 국민 대다수와 달리 정당들은 단 몇 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소위 ‘위성정당’까지 창당할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비례성이니, 대표성이니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적 가치는 허울에 지나지 않았고, 물밑으로는 치밀한 의석 확보 경쟁만이 있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였다. 그 결과 국민은 자신의 표가 지닌 가치에 대한 심각한 불확실성 아래 선거를 치러야 했다.
아쉽게도 2024년 4월 선거가 2020년 선거보다 더 최악의 상황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정치권에서 관찰되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기인한 우려가 크다.
첫째, 제도개혁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이 더욱 둔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9년은 물론 이번 선거제도 개혁 과정 역시 선거일 이전 1년까지 확정하도록 규정된 국회의원 지역구 획정 기한을 무시했다. 해당 규정은 인구이동을 반영한 선거구별 의석수 배분의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정치 신인들이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를 탐색하고 예비후보로 등록해 자신의 이름을 알림으로써 기성 정치인과 경쟁할 기반을 마련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해당 규정이 민주화 이후 줄곧 잘 준수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명분 앞에서 해당 규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위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문제가 된다. 더구나 정치권이 절차적 정당성에 둔감하다는 사실은 제도개혁안에 대한 합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합의에 대한 신뢰성을 약화시킨다. 그 결과 제도개혁의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그로 인한 불편은 유권자가 떠안을 몫이 된다.
이와 같은 역설적 선호는 개혁에 대한 국민 선호의 초점이 선거제도보다는 더욱 포괄적인 정치개혁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국회 및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한국적 맥락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국회를 개혁하는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을 높인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타당하다면,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이율배반적 선호는 결국 국회를 개혁하기 위해 선거제도라는 수단을 개혁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선거제도가 너무 생경한 제도로 개혁됨으로써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반대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개혁의 큰 틀에서 고민한 흔적은 드물다. 오히려 비례대표제의 개혁에 선거제도의 개혁을 제한하고, 비례대표제 개혁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조합하는 데 몰두하는 경향이다.
결국 내년 총선이 이번 선거제도 개혁 과정으로 인해 최악의 선거로 귀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권이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선거제도 개혁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일차적으로 선거구 획정 기한 이전에 선거제도 개혁의 논의를 종결하지 못한 정치권의 반성이나 유감 표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또한 선거제도 개혁 과정이 예비후보 등록, 후보자 공천, 정책공약 개발 등 남은 선거 절차의 원활한 진행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개혁의 일정을 공개하고, 공개한 일정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정치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선거제도의 개혁을 고민하는 것이다. 국회에 제기하는 국민의 실질적인 불만은 일하지 않는 국회이다. 선거개혁에 대한 요구도 이러한 불만을 해소할 방편일 수 있다. 정치개혁 없이 이루어진 선거제도의 개혁만으로 국민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을 발전시킬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