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단독]6세 절반 “사교육 3개 이상”… 영유아도 굴레

입력 | 2023-07-04 03:00:00

[영유아부터 사교육 굴레]〈1〉 ‘취학 전 필수’ 된 사교육
초1 학부모 88% “취학 직전 사교육”
‘年 600만원 이상 지출’ 10% 달해… “어릴때부터 의존, 공교육 약화” 지적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261건 신고… 강사-수능 출제진 유착의혹 수사의뢰




서울 성동구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김모 씨(36)의 6세 첫째 아들은 이른바 ‘영유(영어유치원)’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다닌다. 월 기본 수업료는 약 170만 원. 방과 후 과정으로 코딩, 국어(논술) 수업 등을 추가하면 200만 원이 넘는다. ‘줄넘기 학원’도 일주일에 두 번 간다. 추가로 ‘미술학원’을 목요일마다 다닌다. 2년 전부터는 주 1회 방문교사가 일대일로 지도해주는 홈스쿨링 학습지도 받아보고 있다. 첫째 아들 사교육비로 매달 약 310만 원이 나간다.

동아일보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과 함께 초1 자녀를 둔 전국의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5월 16∼29일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88%(9679명)가 “초등학교 입학 직전(6세) 1년간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켰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9.2%(5408명)는 “1년간 3개 이상의 사교육을 시켰다”고 밝혔다.

올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한 학기(6개월 치) 평균 등록금은 약 339만 원이다. 김 씨가 첫째 아들 학원비로 매달 지출하는 310만 원보다 불과 29만 원 많다. 등하원 도우미 비용까지 포함하면 맞벌이인 김 씨가 버는 돈은 대부분 첫째 교육비, 돌봄비로 나간다. 김 씨는 “주변에서도 대부분 이 정도는 다 한다고 하니까 우리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적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무리인 걸 알지만 시킨다”고 말했다. 김 씨는 둘째 아들(3)도 ‘영유’에 보내는 것을 고민 중이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 맞벌이로 인한 돌봄 공백, 경쟁에서의 조바심에 직면한 부모 중 많은 이들이 고민 끝에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사교육의 문을 두드린다. 이번 조사에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응답은 12%에 그쳤다. 총응답자의 26%는 연간 사교육비가 300만 원 이상이라고 했고, 9.7%는 ‘600만 원 이상’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국내 근로자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327만4000원이었다.

최근 정부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대비나 특수목적고(특목고) 대비 사교육에 치중해 있다. 취학 전 아동들이 처한 사교육의 실태는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매년 통계청이 발표하는 사교육비 조사도 초중고교생만 집계한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영유아기부터 사교육 굴레에 빠지면서 초중고 내내 학원에 의존하고 공교육은 제 기능을 못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홍민정 사걱세 대표는 “영유아 시기에는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과 지원이 중요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뒤처질 것처럼 불안감을 조장하는 사교육 업계의 공포 마케팅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3일 교육부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에 총 26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원 학생들에게 “내가 수능 출제 관계자와 만났다”며 문제를 유출한 혐의를 받은 학원강사는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내 아이만 뒤처질까 조바심”… 0~4세 15%가 국영수 사교육




사교육계 “두뇌 완성기” 불안 자극
석달에 200만원 영어 키즈카페도
“무리한 선행학습, 스트레스 유발
경쟁 부추기는 입시제도 바뀌어야”
2년 전 아들(당시 7세)을 서울의 유명 사립초에 입학시킨 최모 씨는 당시 첫 담임교사에게서 “왜 아이를 미리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느냐”는 면박을 들었다. 같은 반 친구들 상당수는 영어 유치원을 졸업했고, 일반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은 영어 실력 때문에 그 사이에서 주눅 들 수 있다는 것이 교사의 설명이었다. 최 씨는 “마치 내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며 “공교육이 이러니 부모들이 영어 유치원이나 한글 선행학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사립초뿐만 아니라 대다수 공립초에서도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받고 입학한 사례가 흔하다. 한 공립초 1학년 담임교사는 “한글을 안 떼고 오는 학생은 반에 1, 2명뿐이고, 수학도 진도를 앞서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 “재능개발-선행학습 위해” 사교육 택해

본보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전국 초1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8.0%(복수 응답)는 “자녀의 재능이나 소질 계발을 위해” 취학 전 사교육을 시켰다고 답했다. “선행학습을 위해서”는 41.4%, “내 아이만 뒤처질까 봐 하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응답은 23.5%였다. “부부가 모두 맞벌이로 보육이 필요해서”라는 답변은 23.2%였다.

사교육 업계가 ‘유아기 두뇌 완성’ 등 광고로 부모들의 불안을 자극하면서, 사교육 시작 연령도 내려가는 추세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15%가량은 “자녀가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사교육을 시켰다”고 답했다. 0∼4세에 국어 사교육을 시작했다는 응답은 15.4%, 영어는 15.9%, 수학은 13.3%로 나타났다.

사교육의 형태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영어 키즈카페’도 성행 중이다. 주로 백화점에 입점하는 한 영어 키즈카페는 3개월(200만 원대)∼2년(1000만 원대) 단위로 회원을 모집한다. 원어민 교사와 일대일 학습이 가능하고, 독서와 미술 수업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일반 키즈카페와 달리 부모는 입장할 수 없다. 명칭만 키즈카페일 뿐 사실상 사교육 시설인 셈이다.

● 전문가 “학습 취약해질 수도… 심리 문제까지”

3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초등생 약 44만 원, 중학생 58만 원, 고교생 70만 원이었다. 하지만 실제 부모들이 체감하는 사교육비는 이보다 훨씬 많다. 전문가들은 영유아 사교육비가 제대로 집계되면 이에 못지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12월 육아정책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개인 및 그룹지도 영유아의 월평균 교습비는 21만5000원, 단시간 교습학원은 16만6000원, 학습지 수업은 9만∼10만 원 선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사교육이 장기적으로는 학습 동기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트레스로 심리 상담을 받는 유아도 적지 않다. 한유미 호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당장은 영어로 인사하고 셈을 잘하는 게 성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고교나 대학까지 그 격차가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학생은 오히려 자기주도적 학습에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생 때부터 대입에 ‘올인’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영유아 사교육 열풍을 억누르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쟁에서 이기는 아이를 키우겠다’는 부모들의 태도가 변하려면 입시제도와 초중고 공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교육의 출발선인 영유아 단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른 교육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며 “한글도 못 뗀 아이들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