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거미는 하찮은 존재다. 아무렇게나 쓸어내거나 짓밟아도 되는 존재. 그러나 시인 백석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그의 시 ‘수라(修羅)’는 거미가 인간과 다름없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노래한다.
컴컴한 밤이다. 시인은 작은 거미가 방바닥으로 내려오자 무심코 문밖으로 쓸어낸다. 얼마 후 그 자리에 큰 거미가 내려온다. 새끼를 찾으러 온 어미인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인은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그가 거미를 버리는 이유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무심코 버렸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버렸다. 새끼한테 가라고.
안쓰러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거미가 똑같은 자리에 내려온다. 이번에는 알에서 막 나온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새끼다. 시인은 엄마를 찾아온 새끼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새끼를 향해 손을 내민다. 올라오라는 몸짓이다. 그러나 새끼는 무서워서 허겁지겁 달아난다. 여기에서 제목 ‘수라’의 의미가 드러난다. (아)수라는 불교 신화에서 싸움을 일삼는 귀신을 일컫는다. 새끼 거미에게 화자는 수라 같은 존재다. 거미의 가족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다.
시인은 열 개의 문장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 성공한다. 그는 거미에게서 인간을 본다. 거미 새끼는 우리들의 새끼고 거미 엄마는 우리들의 엄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