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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기저귀도 안 떼고 사교육… 오히려 아이들 장래 망치는 毒

입력 | 2023-07-05 00:15:00

동아일보DB


사교육을 시작하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져 요즘은 영유아들의 사교육 열풍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동아일보가 초1 자녀를 둔 전국의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8%가 “초등학교 입학 직전 1년간 사교육을 시켰다”고 답했고, 49.2%는 “1년간 3가지 이상의 사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취학 전 사교육이 필수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영유아기 사교육은 예체능 과목만 시키는 것이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도 빠른 집은 기저귀 떼기 전에 시작한다. 0∼4세에 국영수 사교육을 시작했다는 비율이 과목별로 13∼16%였고, 취학 직전 해가 되면 참여율은 61∼74%로 올라갔다. 한글이나 숫자는 물론이고 요즘은 영어도 기본적인 문장을 모르고 학교에 들어가면 주눅이 들 정도라고 한다. 사교육비 부담도 크다. 유아기 자녀의 연간 사교육비로 300만 원 이상 쓴다는 비율이 26%였다. 영어유치원을 포함해 월 사교육비가 4년제 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약 339만 원)을 웃도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신나게 놀아야 할 시기에 발달 단계를 무시한 인지 중심의 사교육은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지장을 준다고 지적한다. 어려서부터 사교육에 의존하면 초중고교생이 되어도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도 부모들은 “내 아이만 뒤처질까” 하는 불안감에 아이를 선행학습으로 내몰고 있다. 맞벌이 부부들은 보육 부담 때문에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경우도 많다.

기저귀 떼자 벌어지기 시작하는 보육과 교육 격차도 문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마다 제각각인 교육 수준을 상향 평준화해야 사교육과 돌봄 수요를 흡수하고 교육 격차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9월부터 유치원과 보육시설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부모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발달 단계에 맞는 양질의 보육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교육 부담만 덜어줘도 출산할 엄두를 못 내는 분위기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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