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박스’ 만든 이종락 목사 “아기 살리고 싶어 찾아오는 것 청소년-성폭력 등 신고 꺼리는데 출생 통보 의무화땐 되레 역효과… 신원 숨겨주는 ‘보호출산제’ 절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담임목사는 3일 “국내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영아들을 돌보는 곳은 베이비박스가 유일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법과 제도가 미비해 낳은 아기도 못 돌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07년 봄, 새벽에 한 남자로부터 아기를 교회 문 앞에 두고 가니 잘 보살펴 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놀라서 대문을 박차고 나가 보니 굴비 상자에 아기(온유)가 담겨 있더군요.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만든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담임목사(69)가 말했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영아 유기. 관계 기관은 출생신고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고, 지난달 국회에서는 의료기관에 출산 통보를 의무화하는 ‘출산통보제’가 통과됐다. 서울 관악구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베이비박스)에서 3일 만난 이 목사는 “왜 출생신고를 안 하는지 깊은 고민 없이 법으로 강제하다 보니 자꾸만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온유를 돌보기 시작한 뒤에 소문이 났는지 아기를 놓고 가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어요. 근데 언제 어떻게 놓고 가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베이비박스였죠. 온유도 굴비 상자 안에 있다 보니 길고양이가 먹을 것인 줄 알고 상자를 온통 긁고 있었거든요. 마침 체코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착안해 철공소를 하는 친구와 직접 만들었지요. 아, 그리고 제일 먼저 이 말을 하고 싶은데….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엄마들을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로 매도하면 안 돼요.”
―아기를 버린 게 아니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요.
“도저히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안 되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아기를 살릴 방법을 찾고 찾아서 온 엄마들이에요. 진짜 비정하다면 길이나 산에 버렸겠지요. 왜 여기까지 찾아오겠습니까. 그걸 증명하는 게, 작년에 아기 106명이 들어왔는데 이 중 30%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어요. 상담과 설득을 통해 마음을 돌린 거죠. 그래서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고 지켜진 아이들입니다.”
―고민 없이 만든 법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호출산제는 왜 통과가 안 된 건가요.
“출생에 대한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건데….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살아야 알 권리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기돼서 죽은 뒤에 알 권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도 선(先)지원, 후(後)행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기가 아파서 죽을 상태인데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전에는 병원에도 못 가요. 지원도 안 되고요. 주민등록번호를 받으려면 몇 달이 걸리는데…. 일단 생명부터 살리고 행정은 다음에 해도 되지 않습니까? 행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들에게 ‘베이비박스를 찾아가라’라고 안내를 해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들을 돌봐주는 곳은 베이비박스가 유일하니까요. 낳은 아기도 못 돌보면서 저출산 걱정을 왜 하는 겁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