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블랙홀’ 공시생도 직장인도 응시 열풍 “고연봉-안정적” 역대 최다 지원
“이제 로스쿨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어요.”
4일 수도권 대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관계자는 “최근 인문계뿐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까지 대거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지원자는 1만7360명으로 지난해(1만4620명)보다 18.7% 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는 5년 전과 비교하면 65% 급증했다.
리트 응시자가 늘어난 것을 두고 최근 낮은 급여 등을 이유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식자 대학생들이 로스쿨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직장인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로스쿨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공무원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낮은 급여와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것”이라며 “고용 불안을 겪지 않는 동시에 높은 연봉을 받길 원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전문직이 되기 위해 로스쿨로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트’ 지원 19% 늘어 1만7360명
행정고시 응시자는 2년새 25% 줄어
“장래 불안” 직장인도 퇴근후 열공
행정고시 응시자는 2년새 25% 줄어
“장래 불안” 직장인도 퇴근후 열공
“물가는 높아지고 경기는 둔화되니 불안감이 커지더라고요. 시험에 투자한 시간과 공무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을 비교해 보니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리트 지원자 5년 만에 65% 늘어
응시자가 늘어난 것은 인문계와 이공계 학생, 대학생과 공시생, 직장인 등을 가리지 않고 로스쿨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에 대한 선호가 줄면서 행정고시나 7급 공무원 공채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 등을 준비했던 공시생들이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매년 1만 명대를 기록했던 행정고시 응시자 수는 2021년 1만2038명, 지난해 1만495명에 이어 올해 9044명까지 줄며 2년 만에 25% 가까이 감소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무원 정원을 늘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중앙 부처 상당수가 세종시 등 비수도권에 자리 잡은 것도 우수 인재의 공직 지원이 줄어드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리트 시험 준비를 시작한 최모 씨(31)는 “학원비, 교재비에 월 200만 원을 쓰는데 이렇게 어렵게 합격하더라도 공무원 월급이 200만, 300만 원 남짓이라는 걸 생각하니 대안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직장인 “퇴근 후 스터디 모임”
최근 물가가 높아지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퇴근 후 스터디모임을 꾸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올 1월부터 직장인 3명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주 2회 리트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는 박모 씨(30)는 “암기 과목도 행정고시만큼 많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히면 상대적으로 합격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퇴근 후 시간을 따로 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의존하지 않고 전문직 자격증을 따 노후에 대비하려 한다”고 했다.학원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문직 자격증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로스쿨 정원과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1700명가량)는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로스쿨 준비를 하는 게 답이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로스쿨에 합격하더라도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들이 다 한다고 로스쿨을 준비하기 전에 본인의 적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