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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처럼 참된 리더 키워내고 싶어 학교 만들었죠”

입력 | 2023-07-05 10:56:00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 인터뷰




“고 이태석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남겼어요. ‘예수님이라면 이곳(남수단)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라고요.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구수환 이태석 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인터뷰에서 “우리가 아직까지 이태석 신부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모습이 참된 섬김과 봉사의 리더십이었기 때문”이라며 “이 신부같은 리더를 키워보고 싶어 학교를 열었다”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10일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잇기 위한 학교(이태석 리더십 학교 1기·8주 과정)가 출범했다. 이날 첫 수업 강사는 뜻밖에도 스웨덴 5선 국회의원인 올레 토럴.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이태석재단에서 만난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은 “이 신부의 리더십은 섬김과 봉사”라며 “진심으로 사람과 사회를 섬기는 리더를 키우고 싶어 올레 토럴 의원을 첫 강사로 초빙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개봉한 ‘울지마 톤즈’를 감독했다.


―첫 강사로 스웨덴 국회의원을 초빙했다.
“이태석 리더십 학교라고 하니까 종교 관련 강의가 주 일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신부처럼 우리 사회에 봉사하는 참된 리더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개선이 안 되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 법과 제도 탓이라기보다는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레 의원에게도 스웨덴 민주주의와 리더의 역할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지에 대해.”

지난달 10일 첫 강의에서 스웨덴 올레 토럴 국회의원이 리더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태석재단 제공

―스웨덴 국회의원은 어떤 점이 다른가.
“스웨덴 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도 스웨덴 국회의원들의 나라 돈 사용 내역을 요청하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복사도 해준다. 검증 차원에서 올레 의원의 사용 내역을 받았는데, 내역 중에 마이너스(-)로 표기된 부분이 있었다. 받아간 돈이 남아 반납했다는 표시다. 올레 의원에게 물어보니 식대였는데, 상대방이 대신 내서 남았기 때문에 반납했다고 했다. 이런 게 국민과 사회를 진심으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학생들에게 이런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참가자들이 중·고등학생들이던데.
“원래 20명 정원이었는데 40명으로 늘렸다. 자기소개서와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에세이로 뽑았는데, 내용을 보니 도저히 떨어트릴 수가 없었다. 또 강의가 매주 주말에 있는데, 학교, 학원 갈 시간에 여기 올 정도로 진심인 아이들을 떨어트리면 큰 상처를 받을 것도 같고…. 올레 의원이 ‘아이들이 질문 준비를 워낙 많이 해서 대충 대답할 수가 없었다’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 열의가 뜨겁다.”

남수단에서 ‘울지마 톤즈’를 제작하던 시절의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 구수환 이사장 제공

―강의가 끝난 뒤에는 남수단도 방문한다고.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국회 견학과 청년정치인들을 만나고,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는 이 신부의 섬김과 봉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경험을 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울지마 톤즈’는 단순히 오지에서 선행을 펼치는 한 신부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니다.”

―뭘 말하고 싶었던 건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섬김과 봉사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회 지도자들이 좀 보고 배우라고…. 올 가을 2기 학교 때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인인 아르멘 멜리키안 씨를 강사로 초빙한 것도 같은 이유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노약자 수십 명을 수도 키이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800km에 가까운 거리를 목숨을 걸고 직접 차를 운전해 탈출을 도운 인물이다.”

―이 신부 같은 리더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남수단 수도 주마에서 의대에 다니는 이 신부 제자가 70여명이나 된다. 톤즈는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 수도로 유학 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인척들을 찾아다니며 ‘꼭 쫄리(이 신부의 현지 별칭) 신부님처럼 의사가 돼서 돌아와 봉사하겠다’며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신부가 뿌린 씨앗이 그렇게 퍼지고 커진 것이다. 남수단에서도 되는데 우리가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