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금융사기 조직이 실제 범행에 사용한 위조 검찰청 공문서 사진. (경찰청 제공) 뉴시스
40대 의사 A 씨는 지난해 수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라고 소개한 B 씨는 강압적인 목소리로 A 씨의 계좌가 범죄 자금세탁에 사용돼 70건의 고소장이 들어왔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는 A 씨의 자금이 정상자금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수사하겠다며 구속영장과 공문까지 메시지로 전송했다.
A 씨는 수사에 협조하면 약식 조사만 한다는 말에 메시지로 온 링크를 눌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혹시나 사기일까 하는 마음에 금융감독원에 전화해 봤지만 정말로 계좌가 자금세탁에 사용됐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받았다. 해당 앱은 검찰·금융감독원 어디에 전화를 걸어도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연결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당황한 A 씨는 범죄 연루 여부를 확인하려면 재산 내역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가짜 검사 B 씨의 말에 완벽하게 속고 말았다. 홀린 듯 범인이 시키는 대로 예적금·보험·주식을 모두 해지하고 대출까지 받아 현금을 인출해 전달했다. 이후 B 씨는 암호화폐로도 자금을 보낼 것을 지시했다. A 씨는 총 40억 원을 넘겼다. 순식간에 사기범에게 전재산을 털린 것이다.
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검찰과 금융감독원을 사칭하며 ‘범죄에 연루됐다’는 기관사칭형 전화금융사기가 최근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체 전화금융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7363건으로, 전년 동기 1만707건 대비 31% 감소했다. 하지만 기관사칭형 전화금융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같은 기간 3787건에서 4515건으로 19% 증가했다. 피해액도 812억 원에서 931억 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 사례처럼 최첨단 통신기술을 이용한 기관사칭형 전화금융사기가 등장하면서 직업·학력·경력과 무관하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문자메시지에 인터넷 주소(URL)가 포함돼 있으면 절대 누르지 말고, 피해자의 모든 통화를 사기 일당이 가로채는 ‘악성 앱’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구속수사 등을 언급하며 협조하라고 압박하거나 보안 유지를 들먹이며 주변에 얘기하지 말라고 종용할 경우 전화금융사기일 가능성이 크므로 경계해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영장이나 공문서를 절대 문자로 보내지 않는다”며 “절대 수사기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일단 전화를 끊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특히 자산 검사 등을 명목으로 현금·가상자산·문화상품권을 요구하면 100% 사기이니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전화나 문자는 일단 전화금융사기 가능성을 반드시, 언제나 염두에 둬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