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핵심기술을 두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중국에 복제하려는 범죄가 발생하는 등 기술유출 범죄가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이같은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지나치게 관대한 국내 양형기준이 원인으로 꼽힌다. 주요국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기술 유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지 관련 법안을 통해 살펴봤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최근 5년간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사건 총 93건…피해액 25조원 추산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국정원이 적발한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사건은 총 93건으로, 그 중 국가 핵심기술은 33건에 달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액은 2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5년간 국내 산업기술 해외유출 건수. 출처=국정원, 그래픽=국회도서관
해외기술 유출이 발생한 산업의 비중을 살펴보면, 반도체(26%) 기술의 해외유출이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22%)와 전기·전자(12%), 자동차·정보통신(각각 7%), 조선(6%)이 뒤를 이었으며, 기업 규모별로는 중견·중소기업(55%)과 대기업(35%) 순으로 핵심기술의 해외유출이 발생했다.
산업 및 기업 규모별 산업기술 해외유출 현황. 출처=국정원, 그래픽=국회도서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경로로 ▲퇴직자·현직자에 의한 유출이 가장 많았으며 ▲업무제휴·기술협력에 의한 유출 ▲ 사이버 해킹에 의한 유출 ▲제품·기술 수출에 의한 유출 ▲대외투자에 의한 유출이 대표적 경로로 꼽혔다.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기술이 날이 갈수록 경쟁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주요국가는 기술유출 범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주요국의 기술유출에 대한 형사적 처벌기준. 출처=국회도서관
우리나라는 산업기술보호법 등으로 산업기술이나 국가 핵심기술을 법적 보호대상으로 규정하지만,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은 별도의 법률을 두지 않는다. 대신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을 마련해 침해행위를 규율하며, 영업비밀의 범주를 매우 포괄적으로 정의한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규정상 법정형은 매우 강하지만, 실제 처벌 수위는 법정형보다 매우 관대하다. 대표적으로 국내 포탄 제조기술을 미얀마에 재차 불법 수출하려 한 무역업체 대표의 사례가 있다.
2006년 12월경 불법 기술 수출 혐의로 기소돼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한 무역업체 대표가 2010년 초순경 포탄 제조기술을 미얀마로 수출하는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하고 약 760억원을 지급받기로 약정, 3년여에 걸쳐 포탄 제조기술을 미얀마에 재차 불법 수출한 사실이 적발됐다.
재판부는 과거 허가 없이 전략 물자를 수출한 사건에 연루돼 대외무역법 위반죄로 벌금 1,000만원을 받은 적이 있음에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거액의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중단된 사업을 재개, 포탄 생산기술을 국외에 유출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했지만, 새롭게 유출된 기술의 양이나 정도, 문제가 된 기술 유출로 인한 국가적 피해가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등에 의문이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무역업체 대표를 포함해 관련자 3명에 대하여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해 최종 확정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법 2014고단17, 2016노1949, 대법원 2017도12958).
출처=국회도서관
최창수 국회도서관 법률자료조사관은 “우리나라 산업기술보호법 제36조 제1항 및 제2항에서는 ‘국가 핵심기술 또는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을 구성요건으로 삼아 해당 요건이 입증되는 경우에 한해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목적범에 대한 입증이 고의범에 대한 입증보다 어렵기 때문에 최근 국회에 관련 규정을 고의범으로 개정하려는 법안들이 상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국은 공통적으로 해외로의 영업비밀 유출에 대해서 목적범이 아닌 고의범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에서는 고의를 구성요건으로 ‘외국의 정부, 기관, 대리인이 이익을 얻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 또는 이러한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로 영업비밀을 절취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며 “영국의 ‘국가안보법’에서는 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미필적 고의도 구성요건에 포함한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미국의 경제스파이법과 유럽연합 지침, 독일과 프랑스 법률에서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내부고발자 면책 규정이 있다면, 누군가 영업비밀을 빼돌린 사실을 정부에 알리거나, 법원 소송절차상 증거로 제시할 수 있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내부고발이 활성화될 것이므로,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최창수 조사관은 “영국의 국가안보법은 스파이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실정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발의돼 곧 법률로 제정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안보상 중요한 정보의 해외유출을 규율할 수 있는 포괄적인 근거 규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언급한 주요국의 핵심기술 해외유출 방지 입법례를 살펴 우리나라 현행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사항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