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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에 진료 데이터 활용… 병원이 플랫폼 역할해야”

입력 | 2023-07-06 03:00:00

한호성 디지털헬스케어연합포럼 회장
의료기관이 애플처럼 혁신 이끌어… 디지털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환자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 필수적
AI 활용하면 의료 환경 나아질 것



지난달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호성 교수는 “디지털헬스케어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한호성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2006년 세계 최초로 복강경 간 절제술, 2010년 세계 최초 간 이식 수술에 성공한 간·담도·췌장암 분야의 명의다. 외과의사인 그가 4월 ‘정보통신의 날’에 의료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클라우드 기반 빅데이터 센터 구축 및 의료정보 전송 연구(2017년), 블록체인 기반 의료데이터 보안성 연구(2018년) 등 의료 ICT를 연구해 온 성과를 인정받았다. 현재 ‘디지털헬스케어연합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를 지난달 20일 만나 의료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임상의사로서 의료 ICT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2년부터 ICT를 통해 의학영상·환자기록 등 데이터를 주고받거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2002, 2003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초연결 지능형 연구개발망(KOREN)을 활용해 일본외과학회, 아시아태평양과학회 등에 복강경 수술을 생중계했다. 서울대병원의 사명이 우리나라 국민만의 건강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과 행복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의사를 교육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수술 집도 장면을 공유하고 수술법을 전수했다. 덕분에 우리나라 외과 우수성이 알려지며 위상도 많이 올라갔다. 현재 외국 의사들이 공부하러 한국에 많이 오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는 우리나라의 미래 먹을거리 산업이 될 것”이라며 “의료기관이 애플처럼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좋은 TV와 냉장고를 갖기를 원했다. 지금은 건강한 나를 원한다. 바이오기술(BT)은 국운을 걸 만한, 성공 가능성이 있는 미래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이 연구자, 기업가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병원은 환자를 최선을 다해 진료하고, 이렇게 생산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료기기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 환자를 진료하면 운동이 혈당에 좋다 또는 나쁘다는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통해 디지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식이다. 병원이 이런 생태계를 만드는 플랫폼이 되자는 뜻이다.”

-비대면 진료조차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2015년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으로 있을 적에 비대면 진료를 시도한 적이 있다. 국내 의료 수준이 굉장히 높긴 해도 국민들이 해외로 나가면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들이 있다. 미국·유럽 외 제3세계 국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이나 재외국민이다. 르완다 가나 피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우리 국민이 갑자기 아프게 되면 화상으로 연결해서 우리 병원 의사들이 진료했다. 바로 그 직전에 르완다 외교관 부인이 복통이 있어서 케냐의 큰 병원으로 가려고 비행기를 탔다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들었다. 비대면 진료가 환자에게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지금도 결정이 어려울 때면 ‘내가 환자라면 뭐가 좋을까’ 묻는다.”

-인공지능(AI)이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AI는 청진기와 같다. 과거에 의사들은 모두 청진기를 갖고 있었다. 지금은 심장내과 외에는 쓰지 않는다. AI로 의사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청진기처럼 의사 진단을 돕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의사가 더 나은 환경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의사과학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이 따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의사로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컴퓨터 공학자, 디지털헬스케어 기업가 등과 만나게 되면서 지금 디지털헬스케어포럼연합을 이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병원이 문을 활짝 열어 플랫폼이 된다면 의사과학자가 줄줄이 배출될 것이다. 블록체인 등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의학 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언젠가 병원의 담이 허물어질 것이란 믿음이 있다.”

-외과의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7년 전에 췌장암이 큰 혈관 주위로 재발한 65세 여성 환자가 찾아왔다. 진통제를 아무리 써도 듣지 않는 상태로 의학 교과서상으로 보면 수술을 포기해야 할 환자였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며 수술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수술하고 나니 감쪽같이 고통이 사라졌다. 5년을 재발 없이, 고통 없이 더 사셨다. 환자에게는 선물이 됐다고 생각한다.”

-외과의사로서 새로운 길을 제시해 왔다. 후배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결정이 어려울 때, 길이 막막할 때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하고 싶다. 의학 교과서에서 췌장암의 간 전이는 수술 안 된다고 하는데 환자는 수술을 원한다. 그러면 의사는 최선의 의술을 연구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오지에 살거나 병원에 오기 힘든 상황이라면 비대면 진료를 해야 한다. 의사는 늘 환자의 곁에 서야 한다.”

한 교수는 디지털 건강관리 등 의료의 미래에 대해 “어차피 가게 될 길”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복강경 간 절제술을 했을 때, 복강경 담낭암 수술했을 때 모두가 우려했고, 위험한 수술을 한다고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개복 수술보다 복강경 수술이 더 선호되는 것처럼 디지털헬스케어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해도 이 방향이 의학의 미래라고 본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