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연내 시중銀 전환 추진 당국, 금융 부문 경쟁력 제고 나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 관련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 신청할 경우 금융당국은 이르면 연내에 인가를 내주겠다는 방침이다. 뉴시스
31년 만에 새 시중은행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신규 경쟁자를 투입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견고한 과점 체제를 흔들고 금융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기존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적극 허용하고, 인터넷전문은행과 지방은행의 신규 인가도 추진한다.
지방은행 중에선 대구은행이 가장 먼저 시중은행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은행지주회장 간담회에 참석한 김태오 DGB금융그룹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구은행은 올해 안에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사전 브리핑에서 “빠르게 진행하면 올해 안에 (인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소상공인에게 경영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한국신용데이터도 이날 소상공인 특화 은행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과점 누리던 은행들 경쟁 유도… 대구銀, 연내 시중銀 전환 추진
당국 “언제든 경쟁자 진입하게 해
은행 산업을 경합시장으로 바꿀 것”
저축-인터넷銀 인가 정책도 완화
업계 “경쟁 효과에 시간 걸릴 것”
시중은행은 오랜 과점 체제 속에서 ‘이자 장사’에만 치중해 손쉽게 돈을 벌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5일 각 은행지주 회장들과 간담회에서 “우리 은행 산업이 경쟁이 제한된 산업의 특성을 기반으로 손쉽게 수익을 내왔다”고 질타했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은 전체 대출의 63.5%, 예금의 74.1%, 자산의 63.4%를 점유하고 있다.은행 산업을 경합시장으로 바꿀 것”
저축-인터넷銀 인가 정책도 완화
업계 “경쟁 효과에 시간 걸릴 것”
금융당국이 이번에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춘 건 신규 경쟁자를 투입해 시장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나아가 은행권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 산업을 언제든 경쟁자가 진입할 수 있는 경합 시장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며 “실제 경쟁자가 진입하지 않더라도 잠재적 경쟁자에 대해 인식하게 될 경우 경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시중은행의 잠재적 경쟁자 육성
우선 비수도권 등 일부 저축은행의 인수 범위를 4개까지 확대해 인수합병(M&A) 족쇄를 풀었다.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도 기존 각각 60%, 45%에서 50%로 일원화해 지방은행의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인가 정책을 ‘오픈 포지션’으로 열어뒀다. 기존에는 당국에서 인가 방침을 발표한 뒤에 신청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적절한 자본금과 사업계획만 갖추고 있으면 언제든 인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회사들의 상품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신용대출을 다른 금융회사의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온라인 대환대출 인프라가 연내 주택담보대출까지 확대된다. 은행의 고정금리 주담대를 확대하는 등 금리 체계도 개선해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힌다.
금융당국은 또 시중은행의 ‘성과급 잔치’를 막기 위해 고액의 성과급을 한 번에 지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연 지급(성과급 등을 여러 해에 걸쳐 나눠 주는 것)을 확대한다. 은행들이 개별 등기임원의 보수 지급 계획을 주주총회에서 설명(세이온페이·Say-on-Pay)하도록 하고 개별 임원의 보수 지급액 공시도 강화한다. 은행권 경쟁을 위한 ‘당근책’으로 규제 완화도 추진한다. 은행의 투자자문업 대상이 기존 부동산에서 금융상품까지 확대된다.
● 5대 시중은행 “당장은 경쟁 효과 의문”
금융당국의 이러한 방침에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무건전성을 갖춘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이 된다면 경쟁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금융위가 예대마진 공시를 강화하는 등 은행과 소비자의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고 지방은행의 좋은 상품들이 선택을 받을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범했을 때처럼 기존에 없던 편의성이 소비자들에게 제공돼 시중은행의 혁신이 일어났을 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질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31년 만에 시중은행 탄생이 임박했지만 기존 시중은행 사이에선 “당장 실질적인 경쟁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A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의 ‘지역 기반’ 이미지 등을 감안하면 전국 영업망으로 확장이 쉽지 않아 이번 방안이 시중은행의 경쟁 구도를 당장 변화시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B시중은행 관계자는 “대구은행이 기존 시중은행과 견줘 영업 규모가 작기 때문에 경쟁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