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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기운’ 받으러 승산마을로 오이소!

입력 | 2023-07-07 03:00:00

?[K-기업가정신 진주 국제포럼] LG, GS 창업주 배출한 産室
LG 구인회, GS 허만정 故鄕… 조선시대부터 부자마을로 유명
옛 지수초교, CEO 30여 명 배출… ‘금계포란형’ 명당 터
‘베풂’ 철학 깃든 ‘효주원’, ‘지혜로운 물’ 智水




드론으로 촬영한 승산마을 전경. 홍중식 기자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은 LG그룹을 창업한 ‘능성 구씨’와 GS그룹을 창업한 ‘김해 허씨’ 문중 인사들이 수백 년 전부터 뿌리내리고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 부자마을이다. 승산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옛 지수초등학교는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창업주 등 글로벌 기업을 일군 창업주 여럿이 동문수학한 유서 깊은 학교다.

1921년 개교한 옛 지수초등학교는 지난해 3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국내외 기업인에게 전수하는 ‘K-기업가정신센터’로 변모했다. 진주시는 ‘부자 기운’을 받으려 승산마을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을 위해 한국 전통 숙박시설 ‘승산에부자한옥’과 ‘남명지수진취가’ 등을 확충했다.


● ‘부자소나무’와 ‘부자한옥’

옛 지수초교 교사 앞에 서 있는 ‘부자소나무’. 홍중식 기자

산세와 자연경관이 수려한 승산리에는 조선시대부터 부자가 여럿 배출됐다. GS그룹을 일군 ‘승산 김해 허씨’는 600년 전인 조선 전기 1400년대 후반 허추가 현재의 승산리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뿌리내리고 살아왔다. ‘능성 구씨’ 집안이 승산마을에 살게 된 것은 1700년대 초반 현풍·고령현감을 지낸 구문유의 아들 구반이 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하면서부터다.

허씨와 구씨가 수백 년째 터 잡고 살아온 승산마을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고 할 정도로 부자 동네로 유명세를 떨쳤다. 장일영 진주시 문화관광해설사는 “GS와 LG그룹 창업주를 배출해서 부자마을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만석꾼과 천석꾼이 모여 살던 전통적 부자마을이었다”며 “전성기에는 마을에 기와집이 300채가량 있었다”고 소개했다.

옛 지수초교에 들어서면 교사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가 먼저 눈에 띈다. 1921년 지수초교 개교 당시 1회 입학생이던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함께 심고 가꾼 나무다.

효주공원. 홍중식 기자 

이충도 지수초교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이 나무를 심고 가꾸며 기업가의 꿈을 키웠던 회장님처럼 여기를 찾아오신 모든 분이 부자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에 ‘부자소나무’라고 이름 붙였다”고 소개했다.

지수초교는 이병철, 구인회, 조홍제 회장 외에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허준구 GS그룹 명예회장, 구태회 LS그룹 창업주,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등 국내 굴지 기업 창업가 30여 명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기업인의 산실과도 같다.

구자신 쿠쿠그룹 회장 생가, 구자원 LIG손해보험 회장 본가, 구인회 LG 창업주 생가.(왼쪽부터) 홍중식 기자  

경남 의령이 고향인 이병철 회장이 지수초교를 다니게 된 것은 이 회장 누이가 허씨 문중 허순구에게 시집오면서 승산마을에 거주한 것이 인연이 됐다. 경남에서 보통학교로 일찍이 개교한 지수초교에 입학하기 위해 이 회장이 누나 집에 머물며 1회 입학생으로 지수초교를 다닌 것. 그러나 이 회장은 한 학기를 다닌 뒤 상경해 지수초교를 졸업하지는 않았다.

글로벌 대기업 창업주를 여럿 배출한 옛 지수초등학교는 2022년 3월 ‘K-기업가정신센터’로 변모해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갈 ‘기업인’과 ‘창업 준비생’을 위한 교육센터로 탈바꿈했다. 본관 1층 왼쪽에는 ‘K-기업가정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승산마을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 주변 경관, 그리고 승산마을에서 나고 자란 창업주 스토리를 사진과 영상 등에 담아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전시해 놓고 있다.

GS 창업주 허만정 회장의 부친 허준 선생이 말년을 보낸 지신정. 홍중식 기자

장일영 문화해설사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용의 형상을 한 산세가 승산마을을 휘감고 있다”며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방어산이 승산마을을 내려다보는 지세”라고 설명했다. 방어산은 병란과 왜구로부터 지역을 방어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승산마을이란 이름도 방어산의 옛 이름인 승어산에서 유래했다. 승산마을 동쪽에 위치한 방어산은 마을에서 볼 때는 ‘샛별’이 떠오르는 산으로 승산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한 기업가가 일군 기업 이름에는 유독 ‘샛별’을 뜻하는 ‘星’이 많이 들어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 ‘금성’ ‘효성’이 있다.


● 부자 내는 명당자리
승산마을은 풍수지리가들이 부자를 내는 명당자리라 일컫는 ‘금계포란형’이다. 닭이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있는 지세인 금계포란형은 아이를 키우기 좋은 명당을 뜻한다. 또한 풍수지리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는데, 승산마을은 남강 지류인 지수천이 휘감아 도는데 물이 흘러 나가는 수구(水口)가 좁아 부의 기운은 꾸준히 들어오지만 유출은 적어 부자가 많다는 속설도 전한다.

장일영 해설사는 “승산마을에는 대대로 부자가 많이 살았는데 구한말에는 만석꾼 2가구, 천석꾼 14가구에 이를 정도로 당대 최고의 부자들이 모여 살았다”며 “부를 크게 일궜을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의무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좌우익 대립,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허씨와 구씨 문중이 지금의 생가를 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꾸준히 실천해 이웃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전통 숙박시설 승산에부자한옥. 진주시청 제공

승산마을에는 GS 창업주 허만정 회장과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LIG 창업주 구자원 회장과 쿠쿠전자 창업주 구자신 회장 생가 등 국내 대기업 창업주 생가가 오롯이 보존돼 있다. 또한 GS 창업주 허만정 회장 부친 허준 선생이 말년에 마음을 수련하던 지신정과 구씨 대종중의 제각 청강정, 허씨 대종중의 제각 허연정, 허씨 종중 재실 연산재 등 여러 한옥 사당이 잘 정비돼 있다.

승산마을 뒤편에 자리한 한옥 숙박시설 ‘승산에부자한옥’은 ‘부기(富氣)’를 받으려는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부자한옥은 승산마을에 있던 기존 한옥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것으로 안채와 곳간채는 실용적으로 보수했고, 대문채와 사랑채는 증축해 옛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승산마을을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해 안채는 가족실로 꾸몄고, 사랑채는 부부와 연인, 친구 등 2인이 머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곳간채는 취사와 세탁이 가능한 공용 공간으로 조성됐다.


● ‘국립 기업가정신 역사관’ 건립 추진
지수초교 건너편 지수면사무소 옆에는 ‘효주원’이라는 마을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GS 창업주 허만정 회장이 말년에 기거했던 집 바로 앞에 위치한 ‘효주원’은 고향을 사랑한 효주 허만정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부인 하위정 여사가 조성한 것이다. 이후 허 회장 자녀들이 정성을 보태 부친과 마을 주민들이 산책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을공원으로 기부했다. 효주원은 낳고 기른 부모에 대한 애틋한 ‘효심’과 함께 유년 시절 맘껏 뛰놀며 배운 마을 공동체와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려는 ‘베풂’의 정신이 깃든 공간인 셈이다.

승산마을이 속한 지수면은 ‘지혜로운 물’을 뜻하는 ‘智水’다. 지신정 허준 선생과 연암 구인회 회장은 지혜(智)롭게 재물(水)을 사용함으로써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눠 더 크게 만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선각자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지수면과 인연이 깊은 LG그룹 구인회, GS그룹 허만정, 삼성그룹 이병철,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 생가를 관광 코스로 개발하기로 했다. 또한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해 미래 기업을 이끌 국내외 기업가들에게 창의적 비전을 제시해 줄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국립역사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진주=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