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동물원 아프리카코끼리 모녀가 헤어진 지 12년 만에 상봉한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두 코끼리는 서로를 단박에 알아보고 품에 안겼다고 한다. 이런 일은 인간사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동물사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동물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2∼3년 만에 ‘독립’이란 걸 한다. 이를테면 곰은 추운 겨울잠 속에서 낳고 애지중지 2∼3년을 키운 새끼를 어느 날 마치 남처럼 대하며 내친다. 이후 둘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서로의 영역을 탐하는 적으로 보든지 모른 척하고 지나친다.
이런 까닭에 동물원 코끼리 모녀의 상봉에 전 세계 동물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과연 이 둘을 무사히 합사할 수 있을까? 좁은 동물원에선 동종이나 이종을 한 공간에 들여놓는 합사란 극히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이런 대형 초식동물들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한 번의 싸움으로 생사가 갈릴 수도 있다. 이렇기에 일단 합사 전에 전 직원이 물대포, 방패, 마취약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여차하면 바로 떼어낼 준비를 한다.
우선 코끼리 어미를 방사장에 내보냈다. 아! 그런데 코끼리 어미가 방사장에 딸이 싼 똥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흥분했다. 위험한 듯도 보였다. 그 흥분의 의미가 긍정을 뜻하는지 부정을 뜻하는지 애매했다. 드디어 둘의 첫 랑데부! 관계자들의 긴장감은 커졌다. 사실 태어난 지 12년 된 코끼리는 더 이상 새끼가 아니다. 12년이면 이미 어미 크기와 얼추 비슷할 테니 어쩌면 만만치 않은 적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미가 조심스레 다가가더니 코로 딸의 여기저기를 만지고 딸도 금세 똑같이 화답한다. 똥의 반응은 그리움과 환희의 신호였다. 이내 둘은 다시 다정한 모녀 사이로 돌아갔다.
코끼리는 동물의 수호자 혹은 개척자로 불릴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동물이다. 일단 후각, 청각, 촉각이 모든 동물들의 으뜸이다. 거기다 대대로 전해온 물자리를 기억하는 기억력, 죽은 동료를 둘러싸고 애도하는 공동체 의식, 암컷들끼리 조화로운 모계사회를 이루고 사는 사회성도 있다. 자연에서 코끼리가 암컷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는 자동으로 공동체에 귀속되고 그 유대는 평생 지속된다.
코끼리의 모녀 상봉은 동물원 역사에서 꽤 의미 있는 사건이지만 자연에선 아주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코끼리는 갇힌 동물원에서 키우기에는 너무나 크고 영리한 동물이다. 야생에서 코끼리는 멸종위기 동물들의 바로미터 같은 존재다. 만일 코끼리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자연 앞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 코끼리의 멸종위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기심(전쟁, 노동, 밀렵, 서식지 파괴 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최종욱 수의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