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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형준]자동차 정비소에서 글로벌 기업이 되기까지

입력 | 2023-07-07 00:00:00

열정·끈기의 현대차, 세계 ‘톱3’로 성장
위기 때 투자와 비전 제시가 성장 열쇠



박형준 산업1부장


산업계를 오래 취재하다 보니 각 기업의 조직문화를 직간접적으로 느낄 기회가 많았다. 2005년 11월 중동 5개국을 순방한 이해찬 당시 총리를 동행 취재하면서 현대의 조직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총리 일행이 쿠웨이트에서 정유공장 해상터미널 공사를 하는 현대건설에 들렀을 때였다. 현대건설 임직원 수백 명이 공사 현장 약 50m 앞에서부터 2열로 도열해 박수 치며 환호했다. ‘여기가 북한인가’ 생각될 정도로 낯설었다. 현황을 설명하는 현대건설 관계자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고 목소리는 감격에 차 있었다. ‘너무나 뜨겁고 낯선 중동이지만 죽을힘을 다해 철저하게 시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뉘앙스가 아직도 기억난다. 차분하게 현지 사업을 설명하는 다른 건설사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현대는 열정, 끈기, 도전의 DNA를 가졌다.

최근 현대차의 질주를 보면서 과거에 느낀 현대의 DNA가 떠올랐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2000년 10위에서 2010년 처음으로 ‘톱5’에 들었고, 2020년 4위, 지난해에 3위에 안착했다. 올해 1분기(1∼3월)엔 사상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국내 1위에 올라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46년 자동차 정비공장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을 시작점으로 본다면 80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룬 성과다.

2004년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는 현대차가 단기간에 이뤄낸 품질 향상 성과를 극찬하며 ‘Man bites dog(사람이 개를 물다)’라고 표현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오토모티브는 약 2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을 뭐라 표현할지 궁금하다. 품질 좋은 차량을 만들겠다는 열정, 끈기 있게 디자인과 고성능을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올해 산업계 전체는 잔뜩 위축된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230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3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했더니 91로 집계됐다. 100보다 낮다는 것은 2분기보다 경기를 더 안 좋다고 본다는 것이다. 정부의 ‘상저하고’ 경기 전망도 예상처럼 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1.6%에서 1.4%로 낮췄다. 뚜렷한 외부의 경제적 충격이 없는데 1%대 성장을 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기업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땐 인력 채용을 줄이고 비용 절감, 세일즈 및 마케팅 예산 삭감 등으로 대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공격적인 투자와 인재 확보에 나선 기업들이 위기 후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삼성전자는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지만, 1분기 중 반도체 시설에만 9조8000억 원을 투입했다. 연구개발(R&D)에도 1분기 전체 영업이익의 10배가 넘는 6조5800억 원을 투자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호황과 불황 주기가 번갈아 나타난다. 불황에서 진행된 투자는 다시 호황이 왔을 때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위기 때 경영자가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비전을 제시한다고 모든 기업이 비전을 다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전이 없다면 그 비전을 이룰 기회조차 갖질 못한다. 정 명예회장이 ‘독자적인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지 않았으면 현대차는 여전히 자동차 정비공장에 머물렀을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