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괴로움 짓눌러주는
오늘의 괴로움이 고마워
채 물 마르지 않은 수저를
또 들어올린다
밥 많이 먹으며
오늘의 괴로움도 대충
짓눌러버릴 수 있으니
배고픔이 여간 고맙지 않아
내일의 괴로움이
못다 쓸려 내려간
오늘치 져다 나를 것이니
내일이 어서 왔으면,
자고 일어나는 일이
여간 고맙지 않아
봄 여름 가을 없이
둘레둘레 피어주는 꽃도
여간 고맙지 않았으나.
―한영옥(1950∼ )
인터넷을 떠돌다가 2년 전 한 유저가 남긴 댓글을 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건 완벽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견디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적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눌러 댓글은 아직도 맨 위에 올라와 있었다. 2년 내내 그 댓글은 시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난세에 살지만 영웅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김연수의 소설 제목을 빌리자면 ‘이토록 평범한 미래’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희망 사항이다. 괴로워도 살고 기뻐도 살고 살리려고 살고 살리니까 산다. 평범한 사람이 열심히, 성실히 사는 모습이야말로 진짜로 우리를 격려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에 등장하는, 괴로움이 새 괴로움으로 덮이는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장면이라는 말이다.
어제의 고민은 오늘 새로운 고민 앞에서 사라진다. 오늘의 괴로움은 배고픔이라는 새로운 괴로움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다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해결할 수도 없다.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도 편견일 수 있고,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말이 진리일 수도 있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하루하루를 조각보처럼 연결해 가면서 우리의 인생은 계속 진행될 수 있다. 이런 깨달음과 함께 ‘꽃보다 고통’이라는 시인의 메시지가 오래 남는다. 나만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씻어내는 게 아니라는 마음의 위안은 덤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