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문화사/사이먼 몰리 지음·노윤기 옮김/370쪽·2만5000원·안그라픽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장미를 작품에 자주 활용했다.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인공 줄리엣은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것”이라고 말하며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한다. 소네트(짧은 정형시) 109번에선 “나의 장미여, 그대는 이 세상에서 나의 전부”라는 고백이 나온다.
보통 독자들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읽으며 진한 자줏빛 꽃잎과 밝은 노란색 수술을 지닌 루고사 장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루고사는 18세기 후반에야 유럽에 전해졌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쓸 때 영국엔 여러 송이가 뭉쳐서 피는 아르테미스 장미나 꽃잎이 넓게 펼쳐지는 모스카타 장미가 많았다. 또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엔 “향기 달콤한 머스크 장미”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데, 당시 영국 기후에서 머스크 장미는 늦여름에 개화했다. 식물학적으론 오류인 셈이다.
영국 출신 미술작가인 저자는 장미의 역사와 설화를 정리했다. 인류가 장미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건 기원전 22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다. 특유의 향기와 색으로 인간을 매료시킨 덕에 장미는 세계 곳곳에서 재배됐다. 영국 장미전쟁(1455∼1485년)에선 날카로운 가시로 인류를 위협했고, 밸런타인데이엔 달콤한 향기로 사랑을 전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