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원인 알 수 없는 자가면역질환 환자… ‘건강 염려증’ ‘엄살 환자’ 의심 받아 특정 기관 아닌 몸 전체 시스템 문제… 기계 고치듯 다뤄서는 치료 어려워 병원은 환자 고통에 귀 기울여주길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메건 오로크 지음·진영인 옮김/440쪽·1만9000원·부키
현대화된 일상 속에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나고 있지만 환자는 수많은 증상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를 받기 힘들다.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저자 메건 오로크는 우선 환자의 말을 충분히 귀담아들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주문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그 친구, 모임에 안 나오잖아, 아프대. 늘 피곤하고, 여기저기 통증을 달고 살고. 이유도 몰라서 더 답답하대.”
종종 듣는 얘기다. 20대 초반부터 정체불명의 증상들에 시달린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문학 편집자인 저자도 그랬다. “헤밍웨이 소설에서 파산한 이야기를 하듯 아팠다. 서서히, 그러나 갑자기.”
언젠가부터 전기 충격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두드러기, 몸 곳곳의 통증, 발진, 극심한 피로, 머리에 안개가 낀 듯 멍한 상태가 찾아왔다가는 지나가기를 거듭했다. 의사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따라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문제는 이 병들이 서로 연관된다는 점만 알려졌을 뿐, 확실한 이유나 뚜렷한 치료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만 2400만∼5000만 명이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지만 암이나 전염병 같은 ‘분명한’ 병에 비해 파악한 것은 너무도 부족하다.
일할 시간의 4분의 1을 빼앗기며 병원을 전전하던 저자는 현대 의료체계의 한계를 읽는다. 의사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여야 하고 환자는 고장이 난 기계처럼 다뤄진다. 고장 난 ‘부품’이 확실하면 바로 해결책이 나오지만 몸의 전체 시스템에 이상이 있을 경우 통합된 진단과 관리가 힘들다.
저자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의사의 공감 능력 부족이었다. “늘 아픈데 자꾸 바뀐다, 항상 피곤하다”고 말하면 이른바 건강염려증 환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환자가 여성일 경우 ‘엄살 환자’라는 의심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자가면역질환은 여성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면역계가 잘 기능하지 못해 죽는 남성 환자가 더 많은 데서 보듯 여성의 면역계가 더 활발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면역계는 심리적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해결책이 안 보이는 환자를 성가셔하는 의사는 병의 진행에 악영향을 주기 일쑤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특정한 질병을 확실한 해결책으로 고친다’는 의학 모델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얼핏 혼란스럽게 들리는 만성병 환자의 얘기를 참고 들어줄 곳이 많아질 때 자가면역질환자들은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저자는 통합적 치료를 제공하는 이스라엘의 시바(Sheba) 병원을 바람직한 모델의 하나로 꼽는다.
저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놀랍게도 두 번이나 출산에 성공했다. 책에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집과 어머니를 그린 회고록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언제 병이 사라졌다는 식의 서사는 없다. 지금도 관절이 아프고 피곤하다. 그러나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에게 점심을 만들어주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나는 현실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