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 배양육 시장 개척하는 ‘티센바이오팜’ 인공장기 연구하던 중 창업… 미세식용섬유 활용 공법 개발 업계 난제 ‘덩어리육’ 제작… 고깃결-마블링까지 구현 올해 초저가 배양액 개발 목표… “완성도 높여 내년 시식회 열 것”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이사가 4일 서울지사에서 개발 중인 배양육(쇠고기)을 들어보이며 덩어리 형태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대표는 “세계 170여 배양육 개발 회사 대부분이 3D프린터를 활용해 배양육을 개발하는 데 비해 우리는 ‘살아 있는 미세식용섬유’ 개념을 도입해 대량생산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임직원들이 주 원료와 생산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티센바이오팜 제공
티센바이오팜의 포항 본사에 있는 정육점 형태 전시공간에 놓인 여러 덩어리육들. 티센바이오팜 제공
●“미세식용섬유로 덩어리육 대량생산”
배양육은 미국에 앞서 싱가포르에서 2020년에 굿미트가 시판 허가를 받은 바 있다. 굿미트는 배양한 닭고기로 만든 너깃을 판매했다. 한 대표는 “세계적으로 170여 배양육 회사들이 소, 닭, 돼지 등의 세포로 배양육을 만들고 있지만 덩어리 고기 자체를 만드는 곳은 거의 없고 배양육을 원료로 너깃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많이 만들고 있다”며 “고기의 조직을 재현해 고깃결이나 마블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배양육의 모양을 만들어주는 지지체 역할을 하는 바이오 잉크들. 티센바이오팜 제공
티센바이오팜은 동물 세포와 지지체 역할을 하는 식물성 바이오잉크를 섞어 만든 지름 400㎛(1㎛는 100만분의 1m)의 가느다란 식용섬유로 고기 형태를 만든다. 한 대표는 “미세식용섬유 방식은 세포의 손실이 거의 없어 기존 방식에 비해 제작 비용을 100분의 1까지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식용섬유를 활용하기 때문에 근육과 지방섬유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쇠고기 등심의 마블링 형태도 구현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실제 고기를 보면 소, 돼지, 닭 등 모든 고기에 섬유조직이 있다”며 “실제 고기와 비슷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이런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고 했다. 티센바이오팜은 미세식용섬유를 초고속으로 제작하는 시스템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고기의 형태를 먼저 만든 뒤 세포 배양을 통해 세포의 밀도를 높이면 실제 고기와 비슷하게 된다. 한 대표는 “올해 안에 고기를 구울 때 ‘마야르(마이야르·갈변) 반응’까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쇠고기 세포의 밀도를 높일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답을 안다는 확신 들어 학교서 창업”
한 대표는 포스텍에서 인공장기를 만드는 조직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3월쯤 박사과정 중에 옆 팀 동료와 인공장기 기술을 배양육에 적용하는 것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이 창업의 씨앗이 됐다. 한 대표는 “배양육 분야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니 대량 생산과 배양액 단가를 낮추는 것이 업계의 난제였다”며 “조직공학의 장단점을 잘 알고, 다양한 연구를 한 덕분에 내가 그 난제들을 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내내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하던 한 대표는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는 부분을 얘기할 때는 강단과 결기를 내비쳤다.공동창업자인 권영문 이사(35)는 정보기술 회사에 다니다 한 대표의 얘기를 듣고 창업에 더 열성을 보였다. 권 이사는 티센바이오팜에서 식품 데이터베이스와 정보기술 인프라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사업전략최고책임자인 라연주 이사(33)는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개발학 석사를 받고,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연맹 등에서 일했다. 대체단백질과 지속 가능성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연구자문은 한 대표의 지도교수였던 조동우 포스텍 명예교수가 맡고 있다. 정재희 세포공학팀장은 KAIST에서 단백질공학 등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LG화학 바이오공정팀에서 일하다 합류했다. 김건우 공정개발팀장은 의료기기 개발 경험이 많은 전문가로 공정 설계 및 개발, 스케일업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맛을 내는 고기 디자인도 가능”
티센바이오팜은 내년에는 시식회를 열 정도로 고기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후에는 미국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아직 국내에서는 배양육에 대한 승인이 언제 이뤄질지 가늠하기 힘들어 판매 승인이 난 미국 진출부터 먼저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티센바이오팜이 가진 기술을 이용하면 미세식용섬유를 기반으로 고깃결과 마블링을 맞춤식으로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명한 요리사에게 독특한 질감과 맛을 내는 고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세상에 없던 고기 부위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