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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서 만들어도 실제 같은 쇠고기… 맛 보강하고 값은 낮출 것”[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입력 | 2023-07-08 03:00:00

덩어리 배양육 시장 개척하는 ‘티센바이오팜’
인공장기 연구하던 중 창업… 미세식용섬유 활용 공법 개발
업계 난제 ‘덩어리육’ 제작… 고깃결-마블링까지 구현
올해 초저가 배양액 개발 목표… “완성도 높여 내년 시식회 열 것”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이사가 4일 서울지사에서 개발 중인 배양육(쇠고기)을 들어보이며 덩어리 형태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대표는 “세계 170여 배양육 개발 회사 대부분이 3D프린터를 활용해 배양육을 개발하는 데 비해 우리는 ‘살아 있는 미세식용섬유’ 개념을 도입해 대량생산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실험실 배양기에서 ‘길러진’ 배양육이 최근 미국 시장에서 시판을 허가받았다. 지난달 21일 미국 농무부(USDA)는 배양육을 생산하는 ‘업사이드 푸즈(Upside Foods)’와 ‘굿 미트(Good Meat)’ 등 2곳이 생산한 닭고기 배양육의 일반 소비자 판매를 승인했다. 큰 육류 시장을 가지고 있고, 혁신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규범을 먼저 만드는 경향이 있는 미국이 새로운 형태의 고기를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에 이은 조치다.

임직원들이 주 원료와 생산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티센바이오팜 제공

배양육은 소나 돼지, 닭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고기 형태로 만든 것이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를 증식해 단백질과 지방 등을 만드는 것이어서 이론적으로는 가축의 고기와 다를 것이 없다. 콩 같은 식물성 원료를 활용해 만든 고기는 이미 시판 중인데, 이와는 구별되는 분야다.

티센바이오팜의 포항 본사에 있는 정육점 형태 전시공간에 놓인 여러 덩어리육들. 티센바이오팜 제공

배양육은 대체단백질 식품 중 실제 고기 맛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과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2010년대 중반부터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오픈AI의 샘 올트먼 같은 유명 혁신가들은 배양육 개발에 투자를 하고 있다. 난관은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덩어리육 형태로 대량 생산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세포에 영양을 공급할 배양액의 단가를 낮춰야 하는 과제도 있다. 도축을 하지 않고, 숲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인류가 고기를 취할 수 있는 길이어서다.

티센바이오팜(대표이사 한원일)은 2021년 말 배양육 분야에 뛰어든 국내 스타트업이다. 포스텍(포항공대)에서 인공장기를 연구하던 박사가 배양육 대량생산에 관해 ‘답’을 찾은 뒤 창업했다. 4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티센바이오팜 서울지사에서 만난 한원일 대표이사(35)는 “살아 있는 미세식용섬유를 활용해 고기의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세계 어느 기업보다 빠르게, 정육점에서 파는 실제 고기와 비슷한 배양육을 1∼2년 내에 내놓을 계획이다”라고 했다.


●“미세식용섬유로 덩어리육 대량생산”
배양육은 미국에 앞서 싱가포르에서 2020년에 굿미트가 시판 허가를 받은 바 있다. 굿미트는 배양한 닭고기로 만든 너깃을 판매했다. 한 대표는 “세계적으로 170여 배양육 회사들이 소, 닭, 돼지 등의 세포로 배양육을 만들고 있지만 덩어리 고기 자체를 만드는 곳은 거의 없고 배양육을 원료로 너깃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많이 만들고 있다”며 “고기의 조직을 재현해 고깃결이나 마블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양육의 모양을 만들어주는 지지체 역할을 하는 바이오 잉크들. 티센바이오팜 제공 

배양육을 만드는 데는 특정 동물의 세포, 그 세포가 붙어서 증식될 지지체, 세포의 영양분이 될 배양액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지체에 세포를 착상한 뒤 키운다. 지지체를 만들 때 3D바이오프린팅 기술이 활용된다. 지지체가 있는 방식은 세포의 착상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효율성이 떨어진다. 다른 방식으로는 3D 세포 프린팅으로 직접 고기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는 느린 속도로 인해 대량생산은 거의 불가능하다.

티센바이오팜은 동물 세포와 지지체 역할을 하는 식물성 바이오잉크를 섞어 만든 지름 400㎛(1㎛는 100만분의 1m)의 가느다란 식용섬유로 고기 형태를 만든다. 한 대표는 “미세식용섬유 방식은 세포의 손실이 거의 없어 기존 방식에 비해 제작 비용을 100분의 1까지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식용섬유를 활용하기 때문에 근육과 지방섬유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쇠고기 등심의 마블링 형태도 구현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실제 고기를 보면 소, 돼지, 닭 등 모든 고기에 섬유조직이 있다”며 “실제 고기와 비슷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이런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고 했다. 티센바이오팜은 미세식용섬유를 초고속으로 제작하는 시스템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고기의 형태를 먼저 만든 뒤 세포 배양을 통해 세포의 밀도를 높이면 실제 고기와 비슷하게 된다. 한 대표는 “올해 안에 고기를 구울 때 ‘마야르(마이야르·갈변) 반응’까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쇠고기 세포의 밀도를 높일 예정”이라고 했다.

배양육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배양액의 가격이다. 의학 연구 등에 쓰이는 전통의 소태아혈청(FBS) 배양액은 1L에 150만 원가량으로 배양육 제조에 쓰이기에는 턱없이 비싸다. 이에 따라 많은 배양육 회사들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배양액 단가를 낮추고 있다. 소의 희생이 필요 없도록 소태아혈청을 사용하지 않은 무혈청 배양액도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배양액에 비해 100분의 1이나 1000분의 1로 가격을 낮춘 배양액 개발 소식이 들린다. 한 대표는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는 배양육 회사인 만큼 배양액 개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식용작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가격을 2만분의 1로 낮춘 배양액을 올해 안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티센바이오팜은 2027년이 되면 FBS 없는 배양액과 버섯과 채소를 녹여 만든 바이오잉크 등을 합쳐 원료가격 5달러 정도로 1kg의 쇠고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가 답을 안다는 확신 들어 학교서 창업”
한 대표는 포스텍에서 인공장기를 만드는 조직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3월쯤 박사과정 중에 옆 팀 동료와 인공장기 기술을 배양육에 적용하는 것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이 창업의 씨앗이 됐다. 한 대표는 “배양육 분야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니 대량 생산과 배양액 단가를 낮추는 것이 업계의 난제였다”며 “조직공학의 장단점을 잘 알고, 다양한 연구를 한 덕분에 내가 그 난제들을 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내내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하던 한 대표는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는 부분을 얘기할 때는 강단과 결기를 내비쳤다.

공동창업자인 권영문 이사(35)는 정보기술 회사에 다니다 한 대표의 얘기를 듣고 창업에 더 열성을 보였다. 권 이사는 티센바이오팜에서 식품 데이터베이스와 정보기술 인프라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사업전략최고책임자인 라연주 이사(33)는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개발학 석사를 받고,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연맹 등에서 일했다. 대체단백질과 지속 가능성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연구자문은 한 대표의 지도교수였던 조동우 포스텍 명예교수가 맡고 있다. 정재희 세포공학팀장은 KAIST에서 단백질공학 등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LG화학 바이오공정팀에서 일하다 합류했다. 김건우 공정개발팀장은 의료기기 개발 경험이 많은 전문가로 공정 설계 및 개발, 스케일업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맛을 내는 고기 디자인도 가능”
티센바이오팜은 내년에는 시식회를 열 정도로 고기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후에는 미국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아직 국내에서는 배양육에 대한 승인이 언제 이뤄질지 가늠하기 힘들어 판매 승인이 난 미국 진출부터 먼저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티센바이오팜이 가진 기술을 이용하면 미세식용섬유를 기반으로 고깃결과 마블링을 맞춤식으로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명한 요리사에게 독특한 질감과 맛을 내는 고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세상에 없던 고기 부위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표는 “고기를 맞춤식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치를 팔 계획도 가지고 있다”며 “육류 생산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