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대세는 30t 이상 重장갑차, 한국군 K21(25t)은 장병 생명 못 지켜
지난해 9월 경기 여주시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한국군 K21 장갑차가 도하하고 있다. [뉴스1]
지금도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는 하루 수십 대의 장갑차와 전차가 파괴되고 있다. 지뢰를 밟거나 포격에 파괴되는 경우도 있고, 적 대전차 미사일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화력을 총동원해 상대 기갑부대를 공격하기 때문에 파괴되는 기갑차량은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포인트가 있다. 사상자가 급증하는 러시아군과 달리 우크라이나군, 특히 기계화 보병의 사상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엇갈린 러시아, 우크라이나 기갑부대 운명
높은 방어력으로 우크라이나군의 호평을 받은 M2A2 브래들리 장갑차. [GettyImages]
오레호브 돌파 작전에서 생환한 우크라이나군 장병들은 입을 모아 M2A2 브래들리 장갑차의 방어력을 칭송했다. 우크라이나군 기갑부대는 M2A2 브래들리 도입 전 소련제 BMP-2나 BTR 시리즈 장갑차를 운용했다. M2A2 브래들리 장갑차는 지뢰 폭발, 적 포격 같은 상황에서 대단히 높은 방어력을 발휘해 일선 장병들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그 스펙을 살펴보면 27t 전투중량에 걸맞게 충분한 장갑재를 둘러 측면은 14.5㎜ 중기관총탄도 막을 수 있다. 지근거리에 포탄이 떨어져도 직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내부 인원은 안전하다. 전면장갑은 30㎜ 기관포탄까지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된 데다, 엔진룸도 차체 전방에 자리해 내부 승무원을 보호하는 2차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 우크라이나군은 일부 차량의 차체, 포탑에 철판을 추가 부착하기도 한다. 이런 방어력 덕에 일부 우크라이나군 기갑차량은 대전차 미사일에 직격을 당하고도 1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피격된 기갑차량이 수리를 거쳐 곧장 전장에 재투입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러시아군 주력 장갑차인 BMP-2의 경우 전투중량이 14t에 불과하고 측면 장갑은 7.62㎜ 소총탄을 겨우 막는 정도다. 근거리에서 포탄이 폭발하면 탑승 병력을 보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후방 출입구가 매우 작아 유사시 탑승자들이 신속히 탈출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1년 넘게 처절하게 현대전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점점 더 강력한 방어력의 장갑차량을 필요로 한다. 양측 모두 기존 장갑차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철판을 용접하거나 폭발반응장갑 블록을 부착하고 있다. 상부 공격 탄약과 자폭 드론을 막기 위해 강철 지붕을 설치하는 등 조치도 취하고 있다. 장갑차량을 운용하는 병력 2~3명에 승차 보병 6~10명의 목숨을 건질 수 있으니 이 같은 방어력 강화는 당연한 조치다.
우크라이나, 방어력 높은 장갑차 확보 나서
특히 우크라이나는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신형 장갑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체코, 슬로바키아와 보병전투장갑차 공동 구매·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당초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스웨덴으로부터 각각 246대, 152대의 CV90 장갑차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우크라이나도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보다 앞서 스웨덴이 공여한 CV9040C 장갑차 50대도 인수해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브래들리보다 방어력이 더 강력한 이 장갑차에 우크라이나군 장병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CV9040C는 기본형 모델과 비교해 5t의 추가 모듈 장갑이 장착돼 모든 방향에서 30㎜ 철갑탄을 막을 수 있다. 대전차 지뢰와 급조폭발물에 대한 방어 능력도 크게 강화됐다.
우크라이나는 향후 1000대의 CV90 계열 장갑차를 도입할 의향을 밝혔는데, 체코·슬로바키아와 구매 사업 협력에 합의한 모델은 최신 개량형인 CV90 Mk.Ⅳ 버전이다. CV90 Mk.Ⅳ는 모듈식 장갑을 채택한 데다, 이스라엘제 능동방어시스템 ‘아이언 피스트’도 탑재해 방어력이 크게 향상됐다. 대당 110억 원이 넘을 정도로 비싼 가격이지만 각국 군 당국은 CV90 Mk.Ⅳ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장갑차의 강력한 방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시범운용한 수출용 장갑차 AS21.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이런 흐름은 그간 궤도식에 비해 가벼운 장갑차로 여겨지던 차륜형 모델에도 적용되고 있다. 덩치를 키워 방어력을 높인 차륜형 장갑차로는 독일 복서(41t)가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에이탄(35t), 핀란드 파트리아 AMV 시리즈 최신형(32t), 러시아 부메랑(34t) 등 다른 나라의 차륜형 장갑차도 중량화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 모델은 대부분 모듈식 복합장갑을 채택했고 능동방어장치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기존에는 아무리 무거워도 10t 중반 정도이던 차륜형 장갑차가 이렇게 무거워진 이유 역시 생존성 강화 때문이다.
‘대동강 자력 도하’ 조건에 묶인 K21
문제는 한국군이 이 같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군 주력인 K200 시리즈는 이제 장갑차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적의 대전차무기나 지뢰, 기관포는 물론, 중기관총도 막기 힘들 정도로 장갑이 얇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K200 장갑차를 보병전투장갑차로 분류하고 있다. 실상을 보면 K200은 1960년대 초반부터 대량 배치된 M113을 개량한 장갑병력수송차와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 보병전투장갑차로서 구색을 갖춘 K21이 2010년대 들어 전력화됐지만 그 설계 사상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25t급인 K21의 방어력은 1970년대 등장한 미국 M2 브래들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면장갑은 30㎜ 기관포탄을 막고, 측면장갑이 14.5㎜ 중기관총탄을 막을 수 있는 정도다. 이처럼 K21의 방어력이 다른 보병전투장갑차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군 당국이 제시한 “물에 떠서 자력으로 대동강을 건널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도하 능력을 신경 쓰느라 최대 중량 제한이 생겨 덩치를 키우기 어려워진 것이다. 당초 육군의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개발 기획 단계에서는 두 가지 방안이 검토됐다. 각각 자력 도하 능력을 갖춘 25t급 장갑차를 개발하는 첫 번째 방안과 방어력을 대폭 강화한 30t급 장갑차를 만드는 두 번째 방안이다. 그런데 군 당국이 자력 도하 능력을 갖춘 장갑차 개발을 고집하면서 차체 좌우에 부력 발생을 위한 튜브가 설치됐다. 장갑차가 튜브를 이용해 물에 뜨려면 일정 수준 이상 무거워져선 안 된다. 결과적으로 장갑 방어력이 약해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방어력을 희생하면서 억지로 끼워 넣은 장갑차의 자력 도하 능력도 온전치 못하다는 점이다. K21은 튜브를 이용한 급속도하 능력이 장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필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도하용 튜브는 동절기 유빙에 찢어지기 일쑤고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유속 제한, 진입·진출 경사각 제한 등으로 급속도하가 어려워 보인다. 교범상 K21 튜브를 팽창시키고 도하 장비를 점검하는 데 15분이 걸린다. 차라리 K21 부대에 M3 자주도하차량을 지원하고, 이 차량을 이용해 강을 건너는 게 더 빠른 셈이다.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된 러시아군 장갑차. [뉴시스]
유사시 우리 장병 목숨 지키려면…
차륜형 장갑차인 K808과 K806도 비슷한 문제를 보인다. 우선 K808은 ‘차세대 장갑차’로서 이른바 ‘아미 타이거 시범 여단’ 핵심 장비로 선전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현대전 환경에 맞지 않는 장갑차라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17.5t에 불과한 K808의 전면장갑은 14.5㎜ 중기관총을 겨우 막는 수준이고, 측면은 중기관총 공격을 방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최근 등장한 장갑차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하부 지뢰·급조폭발물 방어 능력도 떨어져 기껏해야 대인지뢰 정도만 막아내는 수준이다. 복합장갑이나 반응장갑, 모듈형 장갑 같은 방어 장비도 탑재되지 않아 대전차무기에 공격당하면 내부에 탑승한 11명 모두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이런 장갑차가 첨단무기 대접을 받으며 일선 배치되는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갑차는 이름 그대로 내부 탑승 인원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K21, K808, K806 등 최근 배치되는 한국형 장갑차는 적 중기관총이나 기관포, 북한군이 분대 단위로 가지고 있는 RPG-7 대전차로켓으로부터 내부 병력을 지켜낼 수 없다. 한국 기술력이 부족해 방어력이 우수한 고성능 장갑차를 못 만드는 것도 아니다. AS21이나 타이곤 같은 수출용 국산 장갑차는 복합장갑을 갖췄고, 대전차지뢰나 급조폭발물의 하부 폭발로부터 내부 인원을 보호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게다가 AS21의 경우 능동방어장치까지 갖췄다. 이처럼 우수한 K-장갑차가 정작 한국군에 보급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뭘까. 아직도 병력자원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 군 수뇌부의 안일한 인식 탓은 아닌지 우려된다.
K21, K808 장갑차 가격은 각각 35억 원, 12억 원 정도다. 대당 가격이 100억 원을 훌쩍 넘는 AS21이나 에이탄, 복서의 3분의 1 수준이다. 물론 100억 원은 큰돈이다. 그러나 장갑차 내부에 탄 10명 넘는 장병의 목숨보다 가치 있을까. 최근 한국군은 인구 감소에 따른 병역자원 부족으로 그야말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장병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부디 한국 정부와 군 수뇌부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벌어지는 현대전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본적인 무기체계부터 혁신하길 바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7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