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암보다 무서운 질병이 치매다. 65세 이상 한국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대부분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환자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150가지가 개발됐는데 모두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해줄 뿐 병의 진행을 늦추지는 못했다. 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는 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를 늦춰주는 최초의 치료제다.
▷일본 제약사 에이사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레켐비는 치매 원인인 단백질 침전물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뇌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치료제라고는 해도 효능은 제한적이다. 우선 발병 초기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 병을 낫게 하는 건 아니다. 기억력이나 인지능력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 개선하지는 못한다. 임상시험에서는 18개월간 약물을 투여하면 치매 증세가 악화하는 속도를 5개월 지연시키는 효과가 나타났다. 환자나 가족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는 아니라고 한다.
▷부작용도 작지 않다. 임상시험 참가자의 13%가 뇌부종(대조군은 2%)을, 17%는 뇌출혈(대조군 9%)을 겪었다. 2주에 한 번씩 정맥 주사로 투여하는데 약값이 연간 2만6500달러(약 3460만 원)다. 뇌도 주기적으로 스캔해야 한다. 이 비용까지 합치면 연간 치료비는 9만 달러(약 1억1700만 원)로 추산된다. 미국은 알츠하이머 환자 650만 명 가운데 150만 명을 레켐비 투여 가능 대상으로 보고 이들 약값의 80%를 의료보험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 레켐비의 식약처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사용 허가가 나더라도 제한적인 약효와 부작용 가능성을 저울질하느라, 혹은 비싼 약값 탓에 찾는 사람이 많을지는 의문이다. 국내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96만 명, 치매 관리 비용으로 매년 21조 원을 쓰고 있다. 치매 환자 가족의 64%는 하루 10시간 동안 환자 돌봄에 매여 지낸다. 효과 좋고 안전하고 비용 부담은 적은 꿈의 치료제가 개발돼 ‘나를 잃어가는 병’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