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철학자 최진석, ‘한국의 희망’ 신당 추진 무모한 도전이지만 ‘선도국가’ 비전 새겨볼 만 尹 집권 2년, 시대의 옷자락 제대로 잡고 있나 反카르텔 정부 넘어선 더 큰 미래담론 내놓길
정용관 논설실장
노자와 장자에 대한 고유한 해석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요즘 ‘반(半)정치인’이 됐다. 한 대선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더니 얼마 전부터 무소속 양향자 의원과 함께 ‘한국의 희망’이라는 신당 창당에 나섰다. 그의 행보를 놓고 평가가 분분하다. “철학자가 글이나 쓰고 강연이나 다니지” 등 폄훼하는 이도 없지 않다.
많은 저서들과 강연을 접한 필자는 좀 다른 관점으로 본다. 그의 현실 정치 참여는 일관된 지적 사유의 연장선에 있다는 얘기다.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하고 고치려고 현장에 뛰어들겠다는…. 그는 “철학에 살과 근육이 붙으면 정치가 되고 정치에서 살과 근육이 빠지면 철학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신당이 몇 석이나 얻겠느냐는 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그것이 나의 임무”라고 돈키호테가 말했듯 닿지 않는 별을 잡기 위한 모험이라도 도전 자체는 의미가 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은 지금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경계에 서 있다”며 절박감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신뢰 잃고 염치가 사라진 정치를 바꿔 ‘추격 국가’에서 ‘선도 국가’로 건너가야 한다”고 외친다.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신당의 꿈일지 모르지만, 그 꿈이 작금의 정치판에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는 새겨볼 만하다는 얘기다.
희한한 것은 집권 2년 차를 맞은 현 정권의 이런 노력들이나 성과에 박수 치는 국민이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 지지율은 30%대 중반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찍었던 이들의 상당수조차 마음을 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이른바 ‘이권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뭔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최 교수의 외침대로 결국 국정 철학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등 곳곳이 전선(戰線)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럴수록 국정의 비전과 목표의 수준은 높고 넓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을 폭넓게 쓸 수 있고 인재를 두루 등용하고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많은 국민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정체성을 ‘반(反)카르텔 정부’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건 그 때문이다. ‘법조 카르텔’은 왜 말하지 않느냐는 차원의 지적을 하려는 게 아니다. 반카르텔 정부는 너무 협소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보다 상위 개념의 비전이 제시되고, 그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로드맵 차원에서 카르텔 문제가 나와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수능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 문제가 망국병 수준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다만 윤 정부 5년의 교육대계에 대한 밑그림을 먼저 제시하는 게 순서다. 그런 것 없이 대통령이 디테일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평가원장이 물러나는 식의 일련의 국정 행태가 자연스러워 보일 리 없다. 일부 식자층에서 “다른 국정 영역도 이런 식으로 돌아가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바로 그 점에서 현 정부는 다시 한 번 국정 비전, 국정 운영 방식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윤 정부가 움켜쥐려는 ‘시대의 옷자락’은 무엇인가. 집권 5년 내내 강고한 이익공동체, 먹이사슬을 구축한 전 정권의 병폐를 바로잡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바로잡고 검은돈이 얽힌 비리의 급소(急所)를 정확히 타격해야 한다. 중요한 건 ‘과거’의 사법적 재단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카르텔과의 전쟁이 미래 담론까지 삼켜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