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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인이법, 이태원법, 오염수법… ‘레커법’ 경쟁 언제까지

입력 | 2023-07-10 00:06:00


주요한 사회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수십 건씩 유사한 법안들이 쏟아지고 이후엔 제때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른바 ‘정인이법’과 ‘이태원법’ 등 주요 사건 사고와 관련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117건에 이르는데, 이 중 75%는 아직도 체계·자구 심사조차 받지 못한 채 계류된 상태라고 한다. 최근엔 ‘김남국 코인’ 의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과 관련된 법안이 줄줄이 발의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현장에 우르르 몰려가는 레커차처럼 너도나도 이슈를 따라가는 ‘레커법’들이다.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발의한 제·개정 법안은 35건,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발의된 법안 건수도 각각 25건이 넘었다. 경쟁적으로 터져 나온 법안 중에는 비슷한 내용이거나 심지어 토씨만 살짝 바꾸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적잖다. 다른 법률과의 충돌 가능성이나 위헌 소지가 제기된 사례도 있었다. 정작 처리는 뒷전이다. 정인이법만 해도 사건이 발생했던 2020년 10월 이후 발의된 30건의 법안 중 현재까지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은 단 3건뿐이다. 아동학대 살인사건에 대한 공분이 치솟았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인 이후 나 몰라라 식으로 손을 놔 버린 것이다.

‘레커법’ 홍수는 행정적 낭비와 부실 심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작 필요한 민생법안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의원들의 실적 경쟁으로 법안 발의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21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2만 건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원 1인당 평균 법안 발의 건수는 이미 75건을 넘어선 상태다.

의원들이 숟가락 얹기 식으로 일단 내고 보는 법안들에 충분한 정책적 고민이 담겼다고 보기 어렵다. 국회는 이런 법안이 남발되지 않도록 법제실 검토를 의무화하고, 발의된 법안은 각 의원실이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전, 사후 입법영향분석을 시행하는 독일 등 해외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입법기관의 비효율과 낭비를 부르는 시선끌기용 법안 발의 경쟁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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