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엔저’ 속 엔테크 바람
“적금을 해지해 엔화를 200만 원어치 샀어요. 1년 뒤에는 적금 이자보다 엔화 수익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어서요.”
올해 취업한 권유진 씨(23)는 10일 오전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시중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원-엔 환율부터 확인한다고 했다. 권 씨는 “1년 넘게 들었던 적금을 깨 엔화를 산 후 시중은행 엔화 통장에 넣어놨다”며 “처음엔 일본 여행 경비로 쓰려고 했는데 환율이 계속 떨어지는 걸 보고 투자 목적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원-엔 환율이 900원대 초반으로 내려갈 때마다 50만 원어치씩 엔화를 구매했다고 한다.
8년 만에 엔화 가치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자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사이에선 엔화를 구매해 환차익을 노리는 이른바 ‘엔테크’(엔화+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변동성이 큰 외환 투자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 엔테크에 몰리는 2030세대
엔화 환율이 약세를 이어가면서 청년들 사이에선 “초저금리 시대에 예·적금보다 엔화 투자가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대학생 이모 씨(24)는 아르바이트 주급을 매주 저금하는 대신에 받을 때마다 엔화로 환전하고 있다. 이 씨는 “일주일에 20만 원어치씩 두 달 동안 엔화를 사 모았다”며 “지금까지 160여만 원을 투자했는데 적금 이자를 연 4, 5% 받느니 1년 정도 묵혀 두고 원-엔 환율이 1000원대로 올라가면 파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대학생 한모 씨(23)도 최근 원-엔 환율이 900원대 초반까지 떨어지자 저금해 뒀던 1000만 원으로 엔화를 샀다. 한 씨는 “절반은 여행 경비로, 나머지 절반은 투자 목적으로 엔화를 구매했다”며 “앞으로 400만∼500만 원을 추가로 엔화 사는 데 쓰려 한다”고 했다.
직장인에 더해 대학생들까지 이른바 엔테크에 나서면서 수수료를 줄이는 비결도 공유되고 있다. 한 씨는 “블로그 등을 참고해 수수료가 없는 앱을 찾아 엔화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외환 투자 변동성 커”
엔화에 몰리는 투자금 때문에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급등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달 말 기준 엔화 예금 잔액은 8601억2038만 엔(약 7조8856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달 말(6795억8340만 엔·약 6조2304억 원)에 비해 26.5% 늘어난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외환 투자 비중을 지나치게 늘리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율은 전문가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