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속도 나이들수록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 점점 자극받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 일상에서 새로움 찾는 노력 필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누구나 공평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이 주어진다.
하지만 시간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2023년이 ‘벌써’ 반이 가버렸다. 어지러울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단순한 일상이 계속되면 시간도 빨리 흐른다
시간은 어떤 자원으로도 대체 불가능하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태어나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시간을 소비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 크기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상대적이다. 빠르게 날아가는 로켓 내부의 시간은 외부 관찰자보다 느리게 흐른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의 시간은 지구 표면에 붙어 있는 사람보다 빠르게 흐른다. 그래 봐야 그 차이가 10억 분의 1초가 될까 말까다. 그래서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시간이 거의 동일하게 흐른다고 봐도 좋겠다. 시간은 동일하게 흐른다.
첫눈에 반한 이성을 만났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시간이 멈췄을 리 없다. 누구나 시간은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의문을 가지기조차 어렵다. 해가 뜨고 지며, 따뜻한 물은 점점 차가워지고, 꺼내놓은 음식은 부패한다.
만약 깨진 유리컵의 파편이 다시 모여 말끔한 유리컵 상태로 되돌아가는 영상을 본다면 우리는 영상을 거꾸로 재생했다고 확신한다.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큰 방향이 명백한 시간의 흐름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방향이다.
재밌는 건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르게 느낄 뿐이다.
미국 신경학자인 피터 맹건 박사는 청년, 중장년, 노년으로 세 그룹을 만들어 마음속으로 3분을 센 뒤 실제 흘러간 시간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청년 참가자는 대부분 정확한 시간 길이를 맞혔지만 60대 이상 참가자는 대부분 더 긴 시간을 3분으로 느꼈다. 체감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다는 의미다.
처음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반복적으로 같은 길을 오가면 그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과학 해설자 궤도는 “젊을 때는 새로운 학습이나 보상 과정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다시 말해, 외부 자극을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인데 많은 생각이 정신없이 생겨나니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외부 자극이 일상화되면서 도파민 분비도 줄어들기 때문에 세월이 빠르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끼는 이유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 시간의 속도에 대한 인식은 처리하는 새로운 정보의 양에 영향을 받는다. 어릴 때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에 뇌는 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더 광범위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새로움’은 시간의 속도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예측할 수 있는 일상에 익숙해지고 처음 접하는 정보가 줄어들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 수 있다. 반복적인 일상을 처리하는 데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고 정신 활동의 부하가 줄어든다. 이러한 효율성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너무 바빠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고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요구하는 행동, 의무가 많아진다. 이렇게 외적인 요구에 집중하다 보면 맡겨진 책임을 해치우기 바빠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느낀다. 정 원장은 “이것보다도 시간이 더 빠르다고 느낄 때는 내향적인 활동에 몰두할 때”라며 “외향적 활동을 할 때의 시간은 외적인 기준에 맞춰 흐르지만 사색, 명상, 공상 등에 몰두할 때 시간의 속도는 매우 빠르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젊을 때는 외향적 활동을 통해서 세상에 적응하지만 노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내면세계로 관심이 이동하면서 내향적 활동을 한다”라며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스위스 장인의 명품 시계처럼 얼마나 정교하게 흘러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곳곳에 숨겨진 경이로움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당장 내일 아침 출근길부터 처음 가는 경로를 찾아보고 주변을 관찰한다면 첫 출근길만큼 길게 느껴지는 여정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면 낯선 기억이 시냅스에 저장되는 과정에서 도파민이 대량 분비되고 시간은 점점 느려질 것이며, 하루를 이틀처럼 보낼 수도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