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숲이나 계곡, 바닷가에서 마애불(磨崖佛)을 심심찮게 만난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다.
충남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동아일보 DB
절에 있는 불상이 목조나 철, 청동, 금동으로 조각돼 있거나 탱화로 그려져 있다. 절에 모셔진 불상은 엄격한 도상학적 의미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손가락의 모양이나 눈빛, 미소, 의상까지 완벽한 비례와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 뜨거운 햇볕과 같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마애불은 우리 곁을 지켜왔다.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마애불의 거칠거칠한 질감은 박수근 화백의 화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화강암은 새기기도 어렵지 않기만, 보존도 잘 되는 편이어서 현재까지 수많은 마애불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동해 두타산 미륵바위
마애불은 기원전 2,3세기 인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아잔타, 에룰라 등 석굴사원의 입구나 주벽에 새겨져 있다. 탈레반이 파괴했던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 절벽에 조성됐던 바미안 석불도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중국을 거쳐서 국내로도 들어왔다.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동아일보 DB
수묵화가 호림 남행연 작가가 평생 사랑해왔던 ‘마애불’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7월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루벤이다.
“3년 전 전북 고창 선운사에 한 1주일간 머물 때, 매일 두번씩 도솔암에 올라가 마애불을 보고 왔어요.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마애불의 크기가 어마어마했지요. 사람이 개미만해 보일 정도였어요. 도솔암에서 마애불을 만난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마애불의 존재가 내 가슴을 달구었습니다. 그래서 마애불을 그리게 됐고, 마애불과의 사랑이 시작됐습니다.”
남행연 ‘내금강 삼존 마애불 창군’(문화재 41호)
남 작가는 이후 전국의 마애불상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 그토록 많은 마애불이 있고, 보물로 지정된 마애불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온갖 풍상과 시련에도 당당하게 견뎌온 마애불을 수묵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붓에 먹물을 묻혀 수백 번, 수천 번의 점을 찍어 마애불의 화강암 질감을 표현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해맑은 미소를 담아내야 했다.
남행연 ‘화순 벽라리 민불’
그는 “하나하나 점을 찍어 마애불을 그리면서 내 자신이 돌처럼 단단해져 감을 느꼈다”며 “그것은 마애불이 견뎌온 긴 세월을 몸소 체험해보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다”고 말했다.
남 작가의 마애불 그림을 보면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처럼 수많은 점들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심지어 먹물로 찍은 점 위에 돌가루와 호분(바닷가 모래사장의 굴, 대합 등 조개를 빻아 만든 흰색 안료)을 뿌려 마애불의 질감을 표현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주사 석불, 내금강 삼존 마애불 창군,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좌상 등의 그림이 전시된다.
남행연 ‘불국사 석굴암 본존불’
그 중에서도 경주 불국사 석굴암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본존불(국보 24호) 그림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경주 불국사 주지 스님의 배려로 저녁 노을 속 토굴에서 석굴암 부처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신라시대에 조성된 부처님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삼배를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남행연 ‘운주사 석불’
여행을 다니다보면 만날 수 있는 마애불 중에는 장난꾸러기처럼 해학적인 모습의 부처님도 있다. 사람 얼굴처럼 생긴 돌이나 바위 중에는 미륵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함께 답사를 다니는 지인 중에 전국에 있는 수령 수백년이 넘는 노거수를 찾아 답사하는 나무 전문가가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는 돌과 바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나무를 보러다니면서도, 마애불도 함께 챙겨보는 여행을 다닌다. 산과 들에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있지만, 숨어 있는 마애불을 찾고 감상하는 일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남행연 ‘운주사의 고양이’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