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교수가 되기 전 레지던트 시절, 백내장 수술을 보조하면서 ‘왜 수정체를 둘러싼 얇은 막을 자르는 데 손에 의지할까? 기술을 활용하면, 오차가 없을 텐데’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안과질환 전문 의료기기 업체 ‘티아이’를 설립한 문성혁 공동대표(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안과교수)의 말이다. 주식회사 티아이는 백내장 수술 과정에 필요한 수정체전낭 절개를 일정한 규격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기기, ‘아이메스(iMASS)’를 개발한 기업이다. 문성혁 공동대표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제품화로 이어졌는지, 현재 겪고 있는 시행착오와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문성혁(왼쪽), 이홍재 티아이 공동대표. 출처=IT동아
오차 없는 백내장 수술 위해 절개 장치 규격화
출처=삼성서울병원 블로그
백내장 수술을 위해서 각막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해 수술기구를 삽입한다. 이후 수정체를 둘러싼 얇은 막인 수정체전낭의 앞쪽을 포셉(의료용 핀셋) 등을 이용해 동그랗게 잘라내야 한다. 이때 의사의 손으로 절개를 하다 보면 수정체전낭이 일정하게 잘리지 않거나, 방사형 파열 등이 일어날 위험이 존재한다. 티아이는 이 같은 위험을 막기 위해 규격화된 수정체전낭 절개 장치, ‘아이메스’를 개발했다.
아이메스를 활용한 백내장 수술 이미지. 출처=티아이
아이메스 끝에는 수정체전낭을 동그랗게 자를 수 있는 규격화된 장치가 달려있으며, 전기에너지를 통해 짧은 시간에 일정한 모양과 두께로 수정체전낭을 절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정체전낭을 자른 후 초음파를 이용해 단단한 백내장을 잘게 부수고, 수정체가 있던 자리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면, 백내장 수술이 마무리된다.
아이메스(왼쪽)와 동력인 아이메스 전용 제너레이터. 출처=티아이
문성혁 티아이 공동대표는 “그간 백내장 수술에 필요한 수정체전낭 절개 과정은 의료용 기구를 다루는 의사의 손에 의존해 왔다”며 “손으로 하는 절개 방법은 숙련된 의사라 하더라도 본인의 컨디션이나 환자 상태에 따라 매번 결과가 달라지는 어려운 절개법이다”라고 말했다.
문성혁 티아이 공동대표. 출처=티아이
문성혁 공동대표는 이어 “절개 크기가 매번 일정하지 않거나,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서도 일정한 크기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수정체전낭을 잘라내는 기술과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것이 아이메스를 개발한 계기”라고 말했다.
폭설이 만들어 준 인연...사업화 확신의 계기
안과교수인 문성혁 공동대표와 이홍재 공동대표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문성혁 공동대표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와이어로프의 탄성력을 이용하면, 제품화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이후 특허를 상품화해 줄 수 있는 인물을 수소문하다가 대기업에서 20여년간 디자이너로 일하며, 신제품 개발경험을 쌓은 후 의료용 특수 소재를 국내외에 공급하던 이홍재 공동대표와 만나 제품화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홍재 공동대표는 “제품화를 위해 문성혁 공동대표와 함께 아이메스와 유사한 제품을 개발한 경험을 지닌 일본 업체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때 도쿄에서 나가노 방향으로 향하던 신칸센이 백 년만의 폭설로 멈춰서면서 5일간 함께 고립된 경험이 있다. 이때 둘은 의료기구에 대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경험을 밤새워 나누게 됐다"며 "이야기를 들을수록 함께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이곳에서 살아 나가면 꼭 같이 목표를 실현하자고 약속했다”고 회상했다.
이홍재(왼쪽), 문성혁 티아이 공동대표. 출처=IT동아
이홍재 공동대표는 이어 “결국 5년 같은 5일을 보내고 나서 고립지를 나올 수 있었으며, 이때 일본에서 만들어 온 샘플을 기반으로 목표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재)카이트창업가재단의 지원으로 팁스 과제를 수행하면서 2016년 의료기기 제조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며 “이후 2019년 홍릉강소연구특구에서 진행하는 지식재산권(IP)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해 특허 관련 컨설팅을 받는 등 홍릉의 지원 속에 기술력을 키워왔다”고 덧붙였다.
백내장 수술에 최적화한 의료용 장비를 개발한 티아이가 현재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홍재 공동대표는 “일반 공산품이나 산업용 제품은 시제품 개발 후 양산 준비를 마치면 소비자를 만나게 되는데, 의료기기의 경우 개발을 마치는 단계가 전체 과정의 중간 정도”라며 “개발을 마치면 식약처 등 국가 기관으로부터 등급에 맞는 ‘의료기기 품목허가’ 등 인증을 받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임상실험을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동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홍재 공동대표는 이어 “앞서 소개한 아이메스는 백내장 수술에 있어 필수 과정인 수정체전낭 절개를 일정하고 안전하게 도와줄 장비로 2019년 의료기기 2등급 인증을 이미 획득했다”며 “다만 예상치 못했던 점은 아이메스의 동력인 전용 제너레이터 역시 의료기기 허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기존 병원 수술실의 고주파 장비들이 아이메스의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밀한 미세 조정을 위해 전용 제너레이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험 중에 파악했다. 따라서 현재 전용 제너레이터의 의료기기 3등급 허가를 위한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며, 올해 안으로 허가를 획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한 백내장 수술을 위한 필수 기술로 인정받을 것”
이홍재 공동대표는 “백내장 수술기 ‘아이메스’의 임상실험이 끝나는 내년 초쯤이면 대학병원과 일반 안과병원에서 아이메스가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특히, 티아이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안과 의사들이 소속된 병원을 중심으로 아이메스가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티아이 임직원의 모습. 출처=IT동아
문성혁 공동대표는 “안과교수로서 제품 출시 후 전 세계 많은 안과의사와 환자가 아이메스로 오차 없는 안전한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면, 큰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특히 숙련된 의사가 부족한 개발도상국 등에 아이메스를 공급해 우리나라가 백내장 수술의 난이도를 낮추는 의료기기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