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플 등의 기업이 자기 제품에 필요한 반도체 설계를 자체적으로 하는 것처럼, 병원에서 쓰이는 최첨단 장비에 도입되는 반도체도 병원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날이 곧 다가올 겁니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기초과학과 인공지능(AI) 등 공학 능력도 갖춘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우리니라 의사들이 환자 진료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작 병원의 첨단장비는 해외에서 개발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백신 및 신약연구,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AI 개발을 수행하기 위해 ‘의사과학자’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각 교육기관과 정부에서는 의학과 과학을 동시에 공부한 의사를 양성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 장관은 이날 삼성서울병원에서 의사과학자 20여 명과 만나 현장 의견을 들었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모지훈 단국대 의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구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연구 과제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보상 문제”라며 “의사과학자 양성 단계에서 지속적인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 ‘아리바이오’의 정재준 대표는 “최근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레켐비’의 경우 의사과학자들이 개발 초기에 참여했다면 더욱 효율적인 약물 개발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의사과학자에 대한 국내 수요는 높지만,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내 한 대형 바이오 기업 관계자도 “코로나 관련 백신이 처음 개발됐을 때 한국에서 이를 연구할 수 있는 인력이 100명 미만이었다. 신약 개발을 위해 의사과학자가 더 육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바이오 특화 인공지능(AI) 대학원 신설, 의과대학 내 의료 AI 정규과정 개설 등을 통해 바이오 전문지식과 디지털 기술을 겸비한 ‘양손잡이형 융합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 6개 병원에 ‘혁신형 미래연구센터’를 구축하고 센터당 연 20여억 원을 투입해 의사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융합연구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용길 교수는 “실제 병원 현장에서 의료데이터를 통해 AI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의료 기반 빅데이터 사업에서도 관련 분야를 전공한 의사들의 수요가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절대적인 인력 양성과 함께 배출된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적절한 보상체계를 갖출 유인책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초과학이나 AI 등에서 전문성을 갖추고도 수입원 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다시 안정적인 임상 분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의사과학자 출신의 한 벤처기업 대표는 “현재 전반적인 산업계에서 일반적인 의사가 받는 수입이나 안정성을 제공할 만큼의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인력 양성도 중요하지만, 의사과학자 수요의 토대가 되는 산업계와 학계의 성장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