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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억압 ‘무거운 현실’서, 농담처럼 ‘가벼운 존재’를 그리다

입력 | 2023-07-13 03:00:00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별세
밀란 쿤데라 1929∼2023… 오랜 투병 천재작가 파리서 별세
‘농담’으로 공산주의 감시 비판
‘…존재의 가벼움’ 통해 삶 고찰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등으로 인간의 속물근성을 까발리며 역사 속 개인의 실존을 탐구한 작가, 진짜 세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평범한 소설가들은 경멸당해 마땅한 존재’로 몰아붙였던 천재, 누구보다 전위적이었지만 고전주의적 미학을 추구한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1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고인의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체코 모라비안 도서관(MZK)의 아나 므라조바 대변인은 “쿤데라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위대한 현대 소설가로 꼽히며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고인은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 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 공산당을 비판하다 당에서 추방되고, 입당과 추방을 반복한 그는 1968년 공직에서 해직되고 저서들을 압수당했다.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 국적을 박탈당했다가 2019년 국적을 회복했다.

고인은 1967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첫 장편소설 ‘농담’으로 이름을 알렸다. 작품은 농담마저 할 수 없는 감시가 가득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몰락하는 개인의 삶을 그렸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루이 아라공은 ‘농담’의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역사에 짓눌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년)은 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 토마스를 통해 인간의 속물근성과 불확실한 삶에 대해 관찰한 소설로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쿤데라 신드롬’을 불러왔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는…’은 1989년 필립 코프먼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니얼 데이루이스(토머스 역)와 쥘리에트 비노슈(테레사 역)가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그는 작품에서 기성의 가치관에 회의를 품으며 개인의 자유와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를 비롯한 현실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학은 물론이고 예술 전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설 속에 풀어냈다. 시인, 희곡 작가, 평론가, 번역가로 폭넓게 활동했다.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자유를 주장한 작가로, 소설에 인간의 감정, 사상, 철학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다고 여기며 소설이란 장르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고독을 다룬 장편소설 ‘불멸’,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본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도 유명하다. 장편소설 ‘향수’는 체코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레나와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가 프라하에서 보낸 며칠을 변주곡처럼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삶은 다른 곳에’, ‘배신당한 유언들’, ‘이별의 왈츠’, ‘느림’, ‘정체성’도 사랑받았다. 국내에선 민음사가 15권으로 이뤄진 고인의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는 생존 작가에게는 매우 드물게 할애하는 ‘플레이아드 총서’에 쿤데라 전집을 포함했다. 2020년 체코에서 작가에게 주는 최고 문학상인 카프카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메디치상, 아카데미 프랑세즈상, 프랑스국립도서관상을 받았다.

고인은 인터뷰를 비롯해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정치적 색깔에 대한 질문을 받아 온 고인은 언제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