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임천일 외무성 부상은 이번에 로씨야(러시아의 북한식 표기)에서 발생한 무장반란 사건이 로씨야 인민의 지향과 의지에 맞게 순조롭게 평정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로씨야 지도부가 내리는 임의의 선택과 결정도 강력히 지지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6월 2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전날(6월 24일) 오전 6시 59분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로스토프나노두 군사령부 점령 발표로 러시아 연방에 대한 첫 쿠데타 시도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로부터 3시간 후인 오전 10시 “반역자를 처벌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 북한은 신속히 푸틴 지지를 선언했죠.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한은 건국 초기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이식하면서 군 지휘체계도 모방했습니다. 더구나 이번 러시아 반란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푸틴과 북한 수령들(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군 운영방식이나 용인술에서 흡사한 요소들이 발견됩니다.
푸틴 반란 이면에는 ‘분할통치’와 ‘충성경쟁’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2011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자신의 식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당시 러시아 총리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AP=뉴시스
푸틴이 총리 재직 시절 즐겨 찾던 요리점 주인 출신으로 이른바 올리가르히(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거액을 모은 신흥 재벌집단)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14년 바그너그룹을 세웠습니다. 그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에서 국제여론 등을 의식해 사병 집단을 대리로 내세우기 위한 목적이었죠. 이후 바그너그룹은 시리아와 모잠비크에서도 러시아군 대신 활동을 벌입니다.
바그너그룹은 푸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원 받으면서 점차 러시아 군부와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수익성 높은 군수 계약을 놓고도 양측이 신경전을 벌였다는 게 서방 정보기관의 전언입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6월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군사령부 점령 직후 연설하는 장면. AP=뉴시스
서방 분석가들에 따르면 푸틴은 바그너그룹을 통해 막강한 러시아 군부의 권력을 견제하고자 했습니다.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을 바그너그룹에 몰아줘 군부와 경쟁시키고, 자신은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권력의 누수를 막으려고 한 것이죠. 군부에 대해 일종의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구사한 겁니다.
푸틴은 자신에 대한 충성심은 높지만 혼자서는 권력을 추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프리고진을 바그너그룹 수장에 앉힙니다. 9년간 옥살이를 한 전과자 출신의 요식업자가 감히 자신 만의 권력을 추구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본 거죠. 하지만 이것은 푸틴의 오판이었습니다.
푸틴은 프리고진에 대해 두 가지의 결정적 오판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프리고진은 푸틴의 꽁무니만 조용히 쫓는 캐릭터가 아니었죠.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한국의 합참의장)을 대놓고 비난하며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푸틴과 닮은 북한의 군 지휘체계
1991년 4월 북한군 훈련을 참관하고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노동신문
국방부가 군령 및 군정권을 일괄적으로 갖고 이를 합참 등에 위임하는 우리와 다른 시스템이죠. 이는 조선로동당을 중심으로 일인 수령 독재를 실시하는 북한의 통치구조에서 기인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군령, 군정권이 나뉜 게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군정 기능을 담당한 총정치국이 당의 입장을 내세워 군령권에도 깊숙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북한 군부에서 군사 간부와 정치 간부 사이의 갈등은 일종의 고질병이 된지 오래죠.
그 역사적 연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시계를 1960년대로 돌려봐야합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1차적으로 연안파(해방 이전 중국에서 활동한 공산주의자)와 소련파를 제거한 김일성은 일인 독재체제의 정점을 찍기 위해 유일하게 남은 갑산파 숙청에 나섭니다(1967년 조선로동당 제15차 전원회의 갑산파 숙청 사건)
이듬해인 1968년에는 민족보위상,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도 대거 숙청합니다. 그러곤 1969년 각급 부대의 작전명령서에 군 지휘관과 함께 정치위원의 서명을 받도록 제도를 바꿉니다. 야전 지휘관의 판단만으로 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정점으로 한 조선로동당의 군부 통제를 대폭 강화한 겁니다. 김일성은 “중대장이 맏형이라면 정치 지도원은 맏누이와 같다”고 했죠.
이에 따라 북한군은 김정일 시절에는 무력부(한국의 국방부 격)와 총정치국, 총참모부가 김정일과 국방위원회에 각자 보고하는 ‘3중 통제체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보위사령부(한국의 기무사 격)와 국가안전보위부(국가정보원 격), 인민보안성(경찰 격)에 의한 군부 통제도 이뤄졌죠.
마치 푸틴이 바그너그룹으로 군부를 견제한 것처럼, 북한도 수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반란을 막을 수 있도록 인민군을 분할 통치한 겁니다. 선군(先軍) 정치 등을 통해 거대한 병영 국가가 돼 버린 북한에서 정권 안보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군부를 틀어쥐려는 의도입니다. 푸틴이 요식업자 프리고진을 군부 견제세력으로 활용한 것처럼, 김정일도 군내 서열을 무시하고 충성도에 따라 측근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의 용인술을 구사했습니다.
김정은 세습 과정에서 충성경쟁과 장성택 숙청
사실 러시아나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에서 충성경쟁은 정권교체기(북한의 경우 권력세습기)에 한층 격화됩니다(이하 북한연구학회 <김정은 시대의 정치와 외교> (한울아카데미, 2014) 참고) 독재국가에서 권력승계는 기존 통치연합 내 엘리트간 권력과 이권이 대규모로 재편되는 과정으로, 이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치열해지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경우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세습될 당시 군부에 속한 막대한 이권, 특히 와크(무역 특권)를 놓고 장성택 세력과 군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입니다.시계를 김정일 생전인 2008년로 돌려볼까요. 그해 8월 김정일은 뇌경색에 빠져 죽음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전에 군부에서 제기했으나 김정일에 의해 중단된 후계 논의가 재개되고, 이듬해 1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됩니다.
김정일은 자신이 죽고 나서 후계체제를 안착시킬 측근으로 매제인 장성택을 선택하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당시 선군 체제로 위기를 돌파하면서 몸집이 커진 군부를 장성택을 세워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후 선군시대를 이끈 3인방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총참모장이 배제되고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철 총정치국장 등으로 대체됩니다. 이어 군부의 대표적인 외화벌이 업체인 승리무역합영회사를 장성택 휘하의 조선로동당 행정부로 편입합니다. 그 외에도 군부의 각종 이권사업을 빼앗죠.
하지만 군부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수령에 오른 김정은은 크게 확대된 장성택 세력을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지배연합 내 엘리트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끊임없이 유지해야하는 수령 독재체제의 기본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거죠.
이런 흐름을 군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군부와 당 조직지도부 인사들이 연합한 반(反) 장성택 세력이 2013년 12월 8일 조선로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반당 반혁명 종파행위자’로 낙인 찍고 닷새 뒤 그를 처형합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행정부는 조직지도부에 흡수되고, 군부의 무역사업 제한 조치는 폐기됩니다.
북한에서 반란 일어날 가능성은
지난달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도심을 지나는 바그너그룹의 탱크 앞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군부 이외 다른 엘리트 계층의 반발도 지배연합에서 이권과 권력을 조정해 경쟁을 유발하는 북한의 통치구조상 어려워 보입니다. 김정일~김정은 권력세습기 군부와 장성택 세력 간의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아래로부터의 반발이나 외부세력의 음모 정도가 남을텐데 주체사상의 유일 지배체제에 세뇌된 북한 인민들이 조직적 저항을 벌이기는 힘든 게 현실입니다. 또 외부에 대해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 여건상 외부세력이 침투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군 지휘체계나 엘리트층에 대한 용인술에서 푸틴과 북한의 수령들은 독재체제 속성상 유사한 점이 많지만, 구성원들을 틀어쥐는 장악력 측면에선 북한이 한 수 위라고 봐야할까요.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