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 찾으려 속옷 검사, “연기 지시는 매니저에게” 팬들 몸과 마음 다치고, 아이돌 자립심 형성 저해
손효림 문화부장
“가슴을 만지더니 ‘애플워치죠?’ 하며 작은 공간으로 데리고 가 옷을 올리라고 했다. 어떤 분이 들어와 내가 속옷 검사 당하는 걸 봤다. 너무 수치스럽고 인권이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윗가슴을 꾹꾹 눌러 보더니, 아랫가슴도 꾹꾹 눌러서 너무 당황했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도 아니었다. 아이돌 그룹 팬 사인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항이나 대통령 참가 행사에서는 보통 검색대를 통과하게 하고 검사 기기로 몸에 닿지 않게 훑는다.
피해 내용을 보고 경악했다. 주최 측의 해명은 더 놀라웠다. 행사를 연 하이브 산하 팬 커머스 플랫폼 위버스샵은 9일 입장문을 내고 “전자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해 이를 확인한 것”이라고 사과하면서도 “보안 검색에 비접촉 방식을 도입하는 등 개선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속옷 검사를 한 책임을 팬에게 떠넘긴 데다 보안 검색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팬 사인회에서 가수와 팬은 짧은 시간 1 대 1로 대화한다. 위버스샵은 이를 녹음한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곤란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난감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그런 말을 안 하게 가수들을 교육하면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은 아이돌 보호를 명목으로 일부 소속사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촬영장 등에서도 아이돌에 대한 소속사의 과잉보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연출가가 아이돌에게 연기 지시를 하니, 매니저가 ‘아티스트와 직접 얘기하지 말고 저를 통해서 해 달라’고 말해 다들 기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작사 관계자는 “촬영하는 아이돌은 한 명인데 담당자가 3명이나 왔다. 메이크업, 헤어, 의상 담당자는 따로 있었고, 이들은 로드 매니저, 일반 매니저, 홍보 담당자였다.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고 했다.
과잉보호는 K팝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데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 한 팀을 데뷔시키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든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아주 작은 일이 일파만파 확대돼 회복 불가능한 지경이 되면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고 했다. 이어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작은 위험까지 방지하려면 이중 삼중, 나아가 사중 오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